전 세계 장애 청소년의 IT(정보 기술) 활용 능력을 겨루는 ‘2024 글로벌장애청소년IT챌린지(GITC)’가 지난 3~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보건복지부, LG가 주최하고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등이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2011년 막을 열어 올해로 13회째를 맞았다. 한·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아 필리핀에서 개최된 올해 대회에는 한국, 필리핀, 에티오피아 등 아시아·아프리카 16국 104명이 참가했다. PPT, 엑셀 등 6종목의 경기가 펼쳐졌다.
대회 기간 만난 각국 청소년들은 “IT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도 무너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 티 안 레(21)씨는 17세에 갑작스레 찾아온 골종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의족을 한 그는 이번 대회에서 엑셀 종목 신체장애 계열 1위를 차지했다. 레씨는 “장애를 처음 가졌을 때 주변 사람들이 ‘넌 이제 미래가 없다’고 수군거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며 “하지만 IT 덕분에 장애가 있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의 꿈은 IT 교육자라고 한다.
전북 전주에서 온 나지현(16)양은 “근이영양증을 앓아 평소엔 어머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컴퓨터 앞에선 키보드와 마우스만 있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IT 실력을 키워 나중에 웹툰디자인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PPT·정보 검색 종목에서 2관왕을 차지한 필리핀 시각장애인 아니카 마이엘(16)양은 “장애인들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자기 꿈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마이엘양은 “엔지니어, 의사 중 뭘 해야 할지 고민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 대회는 장애인을 향한 따가운 시선에 갇혀 집 밖에 나오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됐다. 몽골의 시각장애인 쳇센빌레그 바트뭉흐(19)양은 “이번 대회에서 다른 나라 사람을 처음 만나봤는데 외국 친구를 많이 만나 설렌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의 무하마드 자임 빈 모다자리(16)군도 “말레이시아에선 많은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녀를 노출하는 것을 꺼리는데 이 대회는 그러한 생각들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고 했다. 그는 척추분리증을 앓아 태어난 지 3일 뒤부터 수술받았고 주기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번 대회 통합 우승 영광은 전체 6종목 중 4종목에서 3위 안에 들어 입상한 말레이시아의 청각장애인 눌 줄라이라 빈티모드 안와르(16)양에게 돌아갔다. 6세 때 원인 모를 병으로 오른쪽 청력을 점점 잃고 친구들도 떠나가는 아픔을 겪었다는 그는 “특수교사가 돼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도우면서 기쁨을 느끼며 살고 싶다”고 했다.
내년 GITC 대회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에 발맞춰 경주 부근에서 열릴 전망이다. 조성민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사무총장은 “IT 강국인 한국조차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정보 격차는 존재하는데, 개발도상국에선 더 문제가 심하다”며 “장애인들의 디지털 소외를 없애는 GITC를 계기로 장애 학생들이 진학이나 고용 시장에서 IT를 강점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대식 LG전자 대외협력담당 전무는 “장애 청소년들에게 IT를 매개로 세상과 소통할 무대를 제공하고 사회 진출을 돕는 발판 역할을 해온 GITC를 앞으로도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