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푸르메스포츠센터에 휠체어를 탄 한 여고생이 나타났다. 가재울고 3학년 김윤지(18)양. 김양은 지난달 30일 끝난 전국장애인체전 최우수 선수(MVP)를 차지하고 받은 상금 300만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그는 “희귀·난치성 질환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써달라”는 바람을 같이 전했다. 김양은 재단 산하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푸르메스포츠센터에서 어릴 적부터 재활 치료를 받아 왔다.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성장한 그곳에 보답한 셈이다.
김양은 장애인체전 수영 종목에서 5관왕을 차지했다. 여자 접영 50m(S6), 자유형 50m와 100m(S6·S7 통합), 여자 계영 400m, 혼성 계영 200m를 석권했다. 접영 50m 49초54, 자유형 50m 39초86, 자유형 100m 1분26초39는 한국 신기록. 수영 종목은 장애 정도에 따라 S1~S10(지체장애)으로 세분해서 치른다. S1이 가장 심한 장애다.
사실 장애인체전 MVP가 처음은 아니다. 이번 하계체전에 앞서 김양은 지난해 동계 장애인체전에서도 MVP를 받았다. 장애인체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동계체전에선 노르딕 스키 종목에서 4관왕을 달성했다. 김양은 “사실 이번 대회까지 MVP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스키 국가 대표 훈련을 하느라 수영 연습은 거의 못 했다. 대회 2주 전에 몸을 풀고 나섰다. 기록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내서 기뻤다. MVP까지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큰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쓰는 근육은 조금씩 다르지만 운동량이 늘었고, 아무래도 스키 훈련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심폐 지구력이 향상된 것도 (수영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 같다”고 덧붙였다. 김양은 이미 2022년 동·하계 장애인체전 신인상을 모두 휩쓸었다. 동·하계 체전 MVP도 멀지 않은 고지라 봤는데 2년 만에 정복했다.
김양은 선천적 척수 장애(이분척추증)를 갖고 태어났다. 어머니 양은경(47)씨는 “앉은 자세가 이상해서 생후 8개월쯤 MRI 검사를 했는데 장애 판정이 나왔다”고 했다. 세 살 때 재활을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가족과 본인 노력이 더해져 운동에 재미를 붙였다. 김양 부모는 딸이 초등학교 다니기 시작할 무렵 아이가 학교를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수소문한 끝에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 무렵 인근에 푸르메재단 어린이 재활 전문 민간 병원도 들어서 김양은 이곳에서 운동에 열중했다. 여덟 살 무렵 영법(泳法)을 터득하면서 초교 3학년 (장애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수영에 재미를 붙이던 그는 장애인 체육 캠프에서 스키와 만났다. “처음엔 그저 재활을 위해 수영을 했지만, 중1 때 장애인 체육 캠프에 참가해 다양한 스포츠를 접해 보니 또 흥미가 생겼다. 휠체어 레이싱을 하던 도중 스키 감독님이 ‘겁이 안 나면 스키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시길래 노르딕스키에 도전했다. 그때부터 동계와 하계 종목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키와 수영이 뭐가 다르냐고 묻자 “수영은 기록과의 싸움이라 실내에서 정밀한 훈련을 하고, 스키는 속도감 있는 야외 훈련을 한다. 다만 스키는 5km에서 12.5km를 움직이는 중장거리 운동이라 힘이 부칠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키는 넓은 코스와 다양한 환경에서 얻는 경험이 매력적이다. 스키와 수영할 때는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행복하다. 앞으로도 스키와 수영 모두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양은 오는 14일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이다. 평소 장애인 체육 활동에 관심이 많다. 그는 “장애인 친구들은 학교 체육 시간에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맞춰진 프로그램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체육을 기피하게 된다. 장애 학생들이 더 많은 체육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학교나 정부 차원에서 정책 지원을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양은 비장애인 학교를 다니고 있다. 어머니 양씨도 “(장애인이라고) 체육 시간에 평가나 점수를 형식적으로 처리하면 아이들 자존감이 손상될 수 있다. 장애 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정에서 세심하게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현재 목표는 동계와 하계 패럴림픽 출전.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과 2028년 LA 하계패럴림픽에 모두 출전해 메달을 따는 걸 꿈꾸고 있다. 김양은 “국가 대표로 좋은 성적을 내면 더 좋겠지만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성장하며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평소에 가수 뉴진스 노래를 즐겨 듣는다. “스키 대표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 뉴진스 노래를 접했다. 자유롭고 개성 있는 모습이 울림을 줬다”면서 “일상에 활력을 주고, 훈련과 학업으로 바쁜 생활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콘서트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김양은 한국체육대학교 특수체육교육학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체육 선생님이 돼서 장애 학생들에게 운동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기록보다도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다”라고 했다. 수능 다음 날 강원도 평창으로 스키 훈련을 받으러 떠날 예정이다. 이번엔 혼자 짐을 싸고, 휠체어를 타고 출발할 생각이다. “엄마나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경의중앙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고속철(KTX)을 잡아타고 평창으로 갈 거예요. 이제 다 컸잖아요.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