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UFC(종합격투기) 경기에서 일론 머스크(사진 오른쪽)가 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의 챔피언 벨트를 건네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차기 트럼프 정부의 실세로 떠오른 머스크가 최근 경쟁사와 과거의 사업 동료들을 고소하며 ‘테크 업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차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53)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본업인 테크 산업에서도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사업 동지’와 경쟁 기업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확대하며 ‘빅테크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머스크는 지난 14일 미국 인공지능(AI) 기업인 ‘오픈AI’를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링크트인(글로벌 채용 플랫폼)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먼을 피고로 추가했다. 머스크는 2015년 자신이 공동 창업자로 참여한 오픈AI와 이 회사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올해 소송을 제기했다. 오픈AI를 비영리기관으로 운영하겠다는 창업 취지를 어기고 올트먼이 회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투자금을 불법 사용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이번엔 오픈AI의 최대 주주인 MS와 오픈AI의 이사회에 있었던 호프먼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AI 기업에 투자하는 등 담합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머스크 입장에서 MS는 AI 패권을 다투는 경쟁사, 호프먼은 페이팔(온라인 결제 플랫폼)과 오픈AI의 공동 창업 멤버였다.

그래픽=송윤혜

◇앙숙들 옥죄는 머스크

머스크 측은 지난 14일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에 수정된 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면서 ‘오픈AI가 비영리법인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설립 이념을 어겼다’는 기존 주장과 함께, 오픈AI와 MS가 손을 잡고 AI 시장의 경쟁을 저해했다는 주장을 새롭게 제시했다. 107페이지에 달하는 소장에선 양사가 ‘사실상 합병(a de facto merger)’ 상태라는 문구가 총 7번 반복해 나온다. 오픈AI를 상대로 시작한 머스크의 소송이 ‘계약 위반·공갈’ 혐의를 따지는 다툼에서, 반독점 소송으로 확대되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연방 정부가 오픈AI에 대한 MS의 거액 투자를 조사하고 있는 만큼, 차기 정권의 실세로 급부상한 머스크의 소송은 향후 AI 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머스크와 올트먼 두 사람은 2015년 인류와 기술의 미래에 대한 뜻이 맞아 또 다른 9명과 함께 오픈AI를 설립하고, 초대 공동 의장을 맡을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오픈AI의 운영 방향을 두고 갈등을 벌였고, 머스크는 2018년 오픈AI를 떠났다.

오픈AI가 2022년 챗GPT를 내놓으며 AI 산업의 선두주자가 된 후부터 머스크는 올트먼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머스크는 지난 9월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올트먼을 ‘리틀 핑거(Little Finger)’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리틀 핑거는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각종 혼란을 일으키는 교활한 캐릭터의 별명이다.

머스크가 오픈AI와 MS를 함께 공격하며 본격적인 ‘빅테크 길들이기’를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머스크의 ‘계약 위반’ 주장은 서면 증거가 없어 일방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반독점 혐의는 다를 수 있다. 새로 제기한 소장에서 머스크는 “오픈AI와 MS는 AI 분야에서 이미 누리고 있는 독점에 가까운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경쟁자들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오픈AI는 지난 10월 역대 최대 규모 민간 투자인 66억달러(약 9조2100억원) 유치에 성공하면서, 투자자들에 머스크의 xAI를 포함한 경쟁사 투자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이를 증명하는 서류 등 증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페이팔 마피아’ 우정도 깨지나

머스크는 자신과 정치적 의견이 맞지 않은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들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평이 나온다. 머스크는 MS와 오픈AI의 이사회에 있었던 호프먼이 내부 정보를 써서 AI 기업에 투자하는 등 담합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머스크와 호프먼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초기 자금을 댄 ‘페이팔 마피아’ 일원으로, 3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둘의 관계는 머스크가 2020년부터 공화당을 지지하기 시작하며 틀어지기 시작했다. 호프먼은 대표적인 민주당 기부 인사다.

정계와 테크 업계에서 머스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덩달아 그의 자산 규모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15일 미 CNBC방송에 따르면 머스크의 AI기업 xAI는 500억달러(약 70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60억달러(약 8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곧 마무리할 예정이다. 지난달 xAI가 투자 유치에 나섰을 당시 기업 가치는 400억달러였는데, 한 달 사이 100억달러가 늘어난 것이다. 머스크의 우주항공 기업인 스페이스X의 기업가치 역시 곧 진행할 예정인 주식 공개매수에서 6개월 전 대비 400억 달러가 늘어난 2500억달러로 평가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X의 2인자인 그웬 쇼트웰 스페이스X 사장은 “(트럼프 정권에서) 향후 4년 동안 400회를 발사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스타십의 발사 횟수를 급격하게 늘릴 것”이라 했다. 스타십은 지금까지 총 5번 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