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대통령이 던져놓은 ‘비상계엄’ 네 글자가 세상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정치인들이 법전 속에 있던 금단의 언어 ‘탄핵’을 꺼내 발로 차고 다닌 결과였을까. 고삐 풀린 말[言]들은 세상을 질주하며 갈등과 증오, 절망을 부추겼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것도 결국 말이었다. 사채 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한 엄마는 ‘사랑한다 내 새끼’ 한마디를 세상에 남겼다. 걸그룹 뉴진스를 키운 민희진은 ‘맞다이로 들어오라’고 놀라운 배포를 드러냈다. 소설가 한강은 ‘세상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또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지’ 고민이라고 고백했다. 무수한 말들에 울고 웃었던 2024년의 기록.
[정치]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12월 3일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국회 의결에 따라 대통령은 즉시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제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 12월 4일 새벽 비상 계엄 해제요구 결의안 가결을 선포하며)
▲”불법계엄을 막아낸 것이 진짜 보수의 정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12월 16일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에서)
▲”현실의 법정은 아직 두 번 더 남아있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11월 15일 공직선거법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12월1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대국민 담화에서)
▲”내가 들어가면(구속되면) 한 달 안에 정권이 무너질 것”
(정치브로커 명태균, 10월 8일 JTBC 인터뷰에서)
▲”법관 출신 주제에”
(김우영 민주당 의원, 10월 30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게)
▲”흠결과 한계를 성찰하는 시간을 보낸 후 자유를 다시 찾는 날, 새로 시작하겠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12월 23일 공개된 옥중 편지에서)
▲”대한민국,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1월 15일 평양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통일 하지 맙시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9월 19일 9·19 선언 6주년 기념사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월 8일 KBS 신년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 부부싸움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제 아내라고 변명하는 게 아니라 좀 순진한 면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11월7일 기자회견서 김건희 여사 대외활동과 관련해)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중국어)’,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총선 직전인 3월 22일 충남 당진시장 유세에서 윤석열 정부 대중 정책을 비판하며)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 하지만 결코 죽지 않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1월17일 흉기 피습후 보름만에 복귀한 첫 당 회의에서)
[경제·산업]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윤석열 대통령, 3월 18일 민생 점검차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를 들어 보이며)
▲”양곡법과 농안법은 농업의 미래 망치는 ‘농망법’.”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5월 20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양곡법과 농안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건의 방침을 밝히며)
▲”한국은 ‘중진국 함정’ 극복한 성장 수퍼스타.”
(세계은행, 8월 1일 발표한 세계 개발 보고서에서 한국이 인프라와 기술, 교육 투자로 생산성을 높여 선진국으로 거듭났다며)
▲”세계 지도자들이 한국 교육 시스템에 찬사를 보내지만, 그 실상을 알지 못한다. 서울 부자들은 6세 아이를 대학 입시 학원에 보낸다. 여성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일을 그만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9월 2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11월 25일 2심 법정 최후 진술에서)
▲”고려아연을 긍휼히 여겨달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11월 13일, 유상증자 철회와 이사회 의장직 사퇴를 발표하며)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6월 28일, 미국 출장에서 빅테크 CEO들과 회동한 뒤 가진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송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습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10월 8일, 3분기 잠정 실적과 함께 사과문을 발표하며)
▲”정치도 어렵겠지만, 경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죽을 맛입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12월 23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주요 경제단체장이 가진 간담회에서)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 우수했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 , 7월 17일(현지 시각) 신규 원전 2기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선정하며)
▲”몇 명 낳든지 상관없이 자녀 1인당 무조건 1억원씩 지급하겠습니다.”
(이중근 부영 회장, 1월 5일 부영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출산장려금 1억원씩을 지급하며.)
▲”이대로는 제가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아 염치 불고하고 나섰습니다. 그룹의 모든 것을 걸고 태영건설을 살리겠습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 1월 3일 태영건설 채권단 회의에서 워크아웃 개시를 호소하며.)
[사회]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2월 11일 페이스북에서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을 비판하며)
▲”우리가 권력에 아부하는 아귀란 말이냐.”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지난 7월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 김건희 여사 조사 과정을 두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질책하자 반발하며. 법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는 ‘법불아귀(法不阿貴)’에서 비롯된 말)
▲”제가 (없는) 법을 만들어야 하느냐.”
(박성재 법무장관,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 무혐의 결론을 야당이 비판하자 8월 23일 국회에서 한 말)
▲”사기죄에 선고할 수 있는 한도인 징역 15년은 취약 계층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악질적인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 데 부족하다.”
(오기두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 2월 7일 인천 미추홀구 148억원 규모 전세 사기 사건에 대한 선고에서 사기죄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입법부에 요구하면서)
▲”죄인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트로트 가수 김호중, 5월 21일 음주 뺑소니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나와서 취재진에게 한 말)
▲”나는 절대 신이 아니다. 육체를 가진 내가 어떻게 신이겠는가.”
(JMS 정명석 총재, 9월 6일 대전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최후 변론에서 신도 강제추행 등 혐의를 부인하면서)
▲”나는 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기 위해 즈려밟고 더럽혀져야 마땅한 말일 뿐.”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 검찰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 수사에 반발하며 9월 12일 SNS에 올린 글)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자살한 30대 싱글맘 S씨, 9월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유서에 남긴 말)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동덕여대 학생들, 11월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에 사용한 문구)
[문화·스포츠]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12월 7일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진행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빛과 실’ 중에서)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 같은 강연 중 소개한 여덟 살 때 썼다는 시의 일부)
▲”편견과 수치심은 외로운 것이지만, 연민과 은혜는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만듭니다.”
(배우 스티븐 연, 1월 15일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밝힌 소감.)
▲”나는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죽는다. 좌우 진영 양측의 공격으로부터 치열하게 지켜내야 한다.”
(살만 류슈디, 지난 10월 국내 출간된 회고록 ‘나이프’를 계기로 한국 언론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 중)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입니다.”
(정우성, 11월 29일 청룡영화상 시상자로 오른 무대에서 혼외자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들어올 거면 맞다이로 들어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4월 25일 하이브의 ‘어도어 경영권 탈취’ 의혹 감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에서.)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 “즐거우세요? 즐거우시냐고요.”
(방시혁 하이브 의장, 4월 25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연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채팅 메신저 내용 중)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나훈아,2월 27일 나훈아가 공개한 은퇴 선언 편지 중)
▲”우짜면 좋노 싶었습니다 용산이 어느 쪽이고?”
(나훈아, 12월 7일 계엄 직후 대구에서 개최한 단독 공연에서)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흑백요리사 안성재 셰프,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준비하라는 미션에서 오직 고기 굽기로만 승부를 한 참가자를 심사하며)
▲”그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지.”
(대학로 학전 소극장 김민기 대표,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
▲”손으로 (공을) 놓아도 그렇게 놓을 수 없었다.”
(54번째 생일에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역대 최고령 우승한 최경주, 연장전 개울로 날아간 미스 샷이 작은 섬 위에 기적적으로 안착한 상황에 대해)
▲”해 뜨면 마른다.”
(파리 올림픽 양궁 3관왕 달성한 김우진, 메달 땄다고 자만에 젖어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함께하긴 힘들 것 같다.”
(배드민턴 안세영, 파리 올림픽 금메달 획득 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 부조리를 폭로하며.)
▲”나는 나를 버렸다.”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 10년 만에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며)
▲”우린 로봇이 아니다.”
(축구 스타 손흥민, 유럽 축구의 살인적 일정을 지적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축구 대표팀 이강인, 아시안컵 기간 중 주장 손흥민과 몸싸움에 대해 사과하며)
▲”야구 하나에 목숨 걸었던 선수’라고 기억되고 싶다.”
(전 메이저리거 추신수, 24년 프로 생활 마침표를 찍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