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백약이오름에서 오는 6월 결혼식을 앞둔 서른네 살 동갑내기 박기태·강지영 예비부부가‘천국의 계단’을 배경으로 셀프웨딩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코로나로 해외 신혼여행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제주도를 찾아 허니문 추억을 만드는 커플이 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지난 6일 서귀포시 표선면 백약이오름.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이곳에선 입구부터 정상까지 이어진 나무 계단을 배경으로 신혼부부 여러 쌍이 다정한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20여분 올라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 해발 356.9m 정상에 도착했다. 주변 오름과 오름 사이로 성산 일출봉이 바다 위에 떠있는 듯 보였다. 김모(31)씨는 “축구 팬 아내와 유럽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프로그램으로 신혼여행 일정을 잡았지만, 코로나 탓에 행선지를 제주로 바꿨다”며 “해외 유명 관광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제주를 여유 있게 둘러보면서 단 한 번뿐인 허니문 추억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혼여행 성지' 제주 다시 인기

이날 오후 서귀포시 표선면 사려니숲길(15㎞)은 하늘로 쭉쭉 뻗은 20여m 높이 삼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녹색 이끼가 잔뜩 낀 나무 사이로 미로처럼 연결된 폭 1.5m 덱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 마을의 요정이 된 듯한 신비감이 느껴졌다. 숲길 곳곳에 ‘커플 티셔츠’를 입은 남녀가 보였다. 신모(33)씨는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서 방문 후기를 찾아보고 숲길과 오름, 해안 등 호젓하게 산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일정을 짰다”고 말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30년 전 신혼여행이 패키지 관광 상품 같았다면, 최근에는 제주 곳곳의 숨은 ‘핫 스팟’을 찾아 즐기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제주 가시리 유채꽃밭 /오종찬 기자

제주 오름은 20~30분이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고, 하늘과 바다를 한 번에 담은 이국적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신혼부부의 ‘즐겨 찾기 1순위’로 꼽힌다. 제주 동부 지역에선 백약이오름과 다랑쉬오름, 함덕해변 서우봉이 인기 있고, 서부에선 한림읍 금오름, 애월읍 새별오름 등이 꼽힌다. 자연 풍광을 즐기며 쉬어가는 인테리어 카페가 몰려 있는 애월읍 한담리 해안과 구좌읍 월정리 해안도 최근 뜨는 명소로 꼽힌다.

◇'스냅 사진 명소' 거제 외도, ‘한국의 나폴리’ 삼척 장호항

거제‘외도 보타니아’ /거제시

경남 거제시 ‘외도 보타니아(botania)’는 외국 감성이 물씬 나는 스냅 사진 명소로 유명하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있는 외도는 14만5000㎡ 규모로, 거제 본섬에서 약 4㎞ 떨어져 있다. 거제 곳곳에서 유람선을 타면 2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해양성 기후 영향으로 섬은 일년 내내 꽃 향기로 가득하다. 한겨울에는 동백꽃, 봄에는 튤립·수선화·아이리스·꽃양귀비, 여름엔 수국, 가을엔 란타나와 부시 세이지 등이 서로 경쟁하듯 색을 뽐낸다. 여기에 야자수, 선인장, 선샤인 등 아열대 식물까지 30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보타니아’라는 명칭은 ‘바다 위 식물의 낙원’이라는 뜻의 합성어다. 버킹엄궁 뒤뜰을 모티브로 설계한 ‘비너스 가든’은 외도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지중해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과 곳곳에 놓인 비너스상을 배경으로 연인들이 저마다 드라마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강릉 영진 해변 /강릉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항은 ‘한국의 나폴리’로 불린다. 초승달 모양의 해안선과 옥빛 동해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모습을 자아낸다. 여름이면 투명 카누와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등 다양한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근덕면 용화리에서 장호항까지 874m를 잇는 삼척 해상 케이블카를 타면 동해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궁촌리에서 용화리까지 5.4㎞ 구간에선 해양 레일 바이크도 운영한다. 강릉 영진 해변에선 드라마 ‘도깨비’ 속 주인공처럼 메밀꽃을 건네며 서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BTS 앨범 재킷 촬영 장소로 알려진 향호 해변 버스 정류장에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장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남원 광한루에선 ‘과거로 시간 여행’

지난 6일 오후 전북 남원시 천거동 광한루원(廣寒樓園)에서 ‘춘향전’ 무대를 배경 삼아 사진을 촬영하던 한 신혼부부는 “30여년 전 부모님이 신혼여행 때 기념사진을 남겼던 장소에서 똑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에 결혼하는 박찬수(34)씨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광한루 기운을 받아 행복하게 살겠다는 마음으로 찾았다”고 했다. 박은숙(63) 남원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코로나 때문에 광한루를 찾는 관광객이 줄었지만, 신혼부부나 연인의 방문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남원 광한루원 /남원시

광한루원 북문 인근에 있는 전통 한옥 숙박단지 ‘남원예촌’은 신혼부부들에게 인기다. 한옥 건물 7채에 24개 객실(80명 정원)을 갖췄다. 지난해와 올해 객실 가동률이 60%를 넘어, 코로나 사태 이전(2019년)과 차이가 없다. 숙박객 40% 정도는 신혼부부와 연인이라고 한다. 이한영 예촌 매니저는 “건물 곳곳이 사진 촬영 명소”라며 “백제식 건축미가 살아 있는 부용정에서 배우는 판소리와 한복, 한식 체험도 숙박객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광한루 인근 어현동에는 현대적 건축미가 돋보이는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이 있다. 김병종 교수가 자신의 그림 400여점, 미술 관련 자료와 서적 등 모두 5000여 점을 남원시에 기증해 만들어졌다. 국내 유명 화가, 지역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임지남 남원시 공보담당은 “남원을 찾는 신혼부부를 위해 유료 관광지 7곳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숙박과 체험 등 특별 할인 혜택을 주는 ‘남원 춘향 사랑권’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제주·거제·삼척·남원=오재용·김준호·정성원·김정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