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전남 해남군 만희농장에서 농장주 김성희씨가 사료용으로 쓰는 이탈리안 라이그래스를 흔들자 누런 한우들이 몰려들고 있다. 널찍한 사육 공간을 갖추고 유기농 사료를 먹이는 만희농장은 최근 ‘전국 1호 동물복지 축산 한우농장’으로 지정됐다. /김영근 기자

지난 20일 오후 전남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 만희농장. 덩치 큰 누런 한우들이 동네 강아지처럼 천방지축 뛰놀고 있었다.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더니 멈춰 서서 ‘풉풉’ 숨을 몰아쉬었다. 번식우(어미소)와 송아지 20여 마리가 ‘운동’하는 곳은 1375㎡ 크기의 중앙 가축 운동장. 대여섯 바퀴를 뛰더니 풀을 뜯거나, 킁킁거리며 땅바닥 냄새를 맡았다. 농장주 김성희(66)씨는 “소는 느릿느릿해 보이지만 달리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김씨 아내 양만숙(63)씨는 “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서 그런지 출산도 쑥쑥 잘한다”고 했다. 해남 두류산 자락 아래 야외에서 1시간 남짓 몸을 푼 소들은 실내 축사로 스스로 들어가 건초를 먹었다.

◇전국 1호 동물복지 축산 한우농장

드넓은 간척지를 품은 ‘땅끝 마을’ 해남이 동물복지 축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축산 한우의 낙원’으로 불리는 만희농장은 지난 16일 ‘전국 1호 동물복지 축산 한우농장’으로 지정됐다. 2012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인증제를 시작한 뒤 전국적으로 돼지와 젖소농장 각각 17곳, 닭 농장 265곳이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지정됐지만, 한우농장 부문에서 지정 농장이 나온 것은 9년 만에 처음이다. 앞서 전국 ‘동물복지 양돈농장 1호’도 2014년 5월 해남에서 나왔다. 해남 ‘강산이야기’ 농장은 밀집 사육 대신 널찍한 공간을 돼지에게 제공했다.

만희농장 경영을 이어받은 딸 김소영(41)씨는 “동물복지 축산농장의 특징은 넉넉한 사육 공간과 안전한 유기농 사료 두 가지”라고 말했다. 안락하고 안전한 사육 공간에서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하며, 고통과 두려움,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게 동물복지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한 기계화와 고밀도 사육 등 ‘공장식 축산’의 반대 개념이라고 했다.

만희농장의 소들이 중앙 가축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뛰어다니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동물복지 축산 농장인증 심사는 동물의 ‘5대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배고픔, 불편함, 질병, 두려움, 비정상적 행동으로부터 자유 등이다. 또 적정한 사육 밀도를 확보했는지, 동물이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발치(拔齒)나 꼬리 자르기 등 인위적인 조치를 제한하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만희농장에선 한우 160마리가 축사 4개 동(3310㎡)과 가축 운동장(2500㎡)을 사용한다. 한 마리당 공간은 36㎡(11평). 수소는 생후 14개월까지 운동장을 오가다 이후 31개월까지 살을 찌우기 위해 가로 4m, 세로 8m 규모의 축사 한 칸에 주로 머문다고 한다. 일반 농장에선 5마리가 지내는 공간에, 두 마리를 키우는 것이다.

김소영씨는 “일반 한우 농가는 8개월 된 수소를 거세한 뒤 도축 전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지만, 우리 농장에선 일부 고기소를 제외하면 번식용 소 대부분이 평생 마음껏 운동장에서 뛰놀 수 있다”고 했다. 축사에선 미생물을 활용해 파리와 모기 등 해충을 없앴고, 수시로 오물을 치워서 특유의 분변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만희농장은 올해부터 매년 30마리를 출하하기로 목표를 잡았다. 국내 첫 동물복지 한우는 다음 달 서울 백화점에 전량 납품한다. 예상 도매가는 1㎏ 기준(1등급) 3만2000원 정도로, 일반 한우(2만5000원)나 유기농 한우(2만9000원)보다 훨씬 높다. 연간 2억5000만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드넓은 간척지, 유기농 사료 원료가 자란다

해남은 전남에서 유일하게 정부 지정 유기농 한우농장을 보유한 지자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민간 전문 기관이 인증한 전국의 유기농 축산 한우농장은 32곳인데, 이 중 9곳(28%)이 해남에 있다. 군내 사육 두수는 500마리가 넘는다. 단일 지자체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해남은 최근 만희농장의 ‘메기 효과’를 보고 있다. 유기농 한우 농가들이 동물복지 인증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농장 8곳이 전문 기관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다. 전국 2~9호 동물복지 한우농장이 해남에서 탄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농장 개설 13년째를 맞은 만희농장은 2017년 농산원 유기축산 인증 과정을 통과한 뒤 4년 만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심사에 합격했다.

동물복지 축산과 유기농 축산에선 안전한 사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우는 이탈리안 라이 그라스를 말린 건초와 곡물을 넣은 유기농 사료를 잘 먹는다. 벼처럼 길쭉한 진초록의 이탈리안 라이 그라스는 밑동을 베고 일주일 정도 말리면 건초가 된다. 한우의 조사료(粗飼料)다. 농약 없이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것이 핵심이다. 해남에는 축구장 면적(8250㎡) 360여개에 달하는 300만㎡ 간척지에서 건초 원료를 재배한다. 전남에선 영암과 함께 가장 넓은 조사료 재배지를 갖췄다. 김성희씨는 “양질의 조사료를 자체적으로 대량 수급하는 체계를 갖춘 곳은 전국에서 해남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남=조홍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