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만에 발견된 빛바랜 사진 속의 고 전재수 군. 오른 쪽에서 두번째 어린 아이가 고인이다. /5.18유공자유족회 제공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2-22묘역.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전재수(당시 초등 4학년·11세) 군의 묘비에는 사진이 없다. 당시 가족들에게 고인의 생전 사진이 한 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묘비 옆 영정사진 자리에는 사진 대신 무궁화 사진이 새겨져 있다.

41년 동안 얼굴 없이 남아 있던 고인의 묘비가 올해 어린이날을 맞아 얼굴을 갖게 됐다. 그의 어린 시절 사진이 최근 가족들에 의해 발견됐다.

5·18민주화운동유족회에 따르면, 전재수 군의 형 재룡(60) 씨는 지난 1월 부친의 기일을 맞아 유품을 정리했다.

20여년 부친이 돌아가신 뒤 유품을 보자기에 싸 놓은 뒤 한 번도 열어보지 않다가 이날, 부친의 사진을 보고 싶어 유품 보자기를 풀어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앨범을 정리하던 중 큼지막한 사진 뒤에 겹쳐진 작은 사진에서 동생 재수 군이 아버지·고모들과 함께 찍은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재룡씨는 당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동생이 새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가족들은 그동안 구하기 위해 사진을 구하기 위해 전재수 군이 다니던 초등학교와 동창생들을 수소문해 찾아다녀보기도 했지만 어디에서도 고인의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가족들은 국립5·18 민주묘지 묘비에 마련된 영정 사진 자리에 무궁화 사진을 대신 새겼다. 유영봉안소와 온라인 추모를 할 수 있는 홈페이지에도 사진을 채워넣지 못했다.

국립5.18민주묘지 사이버참배 공간에 올라 있는 고 전재수 군의 사진. /국립5.18민주묘지 홈페이지

매년 5월이 되면 얼굴 없는 묘비 앞에서 늘 미안한 마음이었던 가족들은 이번에 발견한 사진으로 41년 만에 잃어버린 동생의 얼굴을 되찾아 주기로 하고, 국립묘지 측에 묘비의 무궁화 사진을 얼굴 사진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묘지 측은 먼저 유영봉안소와 홈페이지에 사진을 채워 넣었다.

가족들은 또 유족회와 함께 내달 5일 어린이날에 맞춰 고인의 영정 사진을 새겨넣은 묘비 제막식 열기로 했다. 제막식은 추모사와 유가족 인사, 헌시 낭송 등으로 조촐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전재수 군은 1980년 5월 24일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마을 앞동산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다 참변을 당했다.

당시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있던 11공수 특전여단과 7공수 특전여단은 이날 명령을 받고 송정리로 향하던 중, 무장 시민군 병력으로 오인한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과 총격전을 벌였다. 전재수 군은 이 과정에서 허리와 대퇴부 등에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한편,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희생자 묘지 898기 중 49기에는 아직도 영정 사진 대신 무궁화 사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