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3일 오후 경북 경주솔거미술관. 한국화 거장 박대성(76) 화백의 특별기획전 ‘서화(書畵), 조응(調應)하다’가 열리는 전시관에 어린이 관람객 2명이 들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전시관 한가운데 있는 박 화백 작품 위에 눕기도 하고, 무릎으로 문지르고 다니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일부 글자가 뭉개지고 훼손됐다. 하지만 당시 아이들의 아버지는 이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사진을 찍어 줬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시대 최고 명필로 꼽혔던 김생의 글씨를 모필한 것으로, 가로 39㎝, 세로 19.8m에 달하는 대작이다. 경북 봉화군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의 글씨를 그대로 따라 썼다. 두루마리 형태로 액자에 넣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작품 가격은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전시관에선 관람객과 작품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안전선을 제거한 상태였다.
작품이 훼손된 사실을 알게 된 미술관 측은 방범카메라(CCTV)에 녹화된 화면을 통해 아이들 가족을 찾아 항의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작품을 만지면 안 되는지 몰랐다.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술관 측은 박 화백에게도 아이 부모의 이 말을 전했다.
이후 미술관 측에서 박 화백에게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는데, 박 화백은 어린이가 그랬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박 화백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나도 손주들이 있는데,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이 뭔들 못하겠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어른들이 조심해야 한다. 우리 관람 문화가 좀더 나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술관 측이 작품을 복원해 전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박 화백은 “좀 긁히고 그래도 그것도 하나의 역사이니 놔 두는 게 낫겠다”고 했다고 한다. 박 화백은 “전시를 마친 뒤에 작품을 조금 ‘수술’하긴 해야겠다”고 말했다. 박 화백의 기획전은 오는 6월 20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