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47)씨는 2014년 아내 B(46)씨가 잠든 사이 카카오톡 내용을 몰래 들여다봤다.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는데, 이날 아내가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자 불륜을 의심해 휴대전화를 열어본 것이다. 카카오톡 대화에서 아내는 어느 남성과 “추석 당일 만나자”는 말을 나눴다.

A씨는 2019년 아내의 외도를 추궁하다 이혼을 요구받기도 했다. 그해 11월 그는 갑작스러운 위장 통증을 느꼈다. 이듬해 1월 건강검진에선 위염과 식도염 진단을 받았다. 그는 칫솔 등에서 소독제(락스) 냄새가 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출근 전 자기만 알 수 있도록 놓아둔 세면도구 위치가 퇴근 후 바뀐 것도 찜찜했다. 화장실에는 못 보던 락스 통이 놓여 있었다. 그는 화장실 내부를 향해 녹음기와 카메라를 설치했다. 나중에 확인한 영상에는 칫솔에 락스를 뿌리며 “왜 안 죽지?” “오늘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런 상황이 두 달 동안 25차례 찍히고 녹음됐다. 그가 이 같은 증거를 들이대며 지난해 4월 아내를 살인 미수 혐의로 고소하자,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문자 기록을 몰래 보고 대화를 녹음했다며 맞고소했다.

대구지법 형사12부(재판장 이규철)는 통신비밀보호법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각각 무죄와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A씨가 카메라와 녹음기 등을 설치한 것에 대해서는 무죄, 외도를 의심해 아내의 카카오톡 대화를 훔쳐본 것에 대해선 벌금 100만원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 유예는 범행이 가벼운 경우 일정 기간 형(刑) 선고를 미루고, 그 기간을 사고 없이 지내면 형 선고를 없던 일로 해주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녹음기와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아내의 범죄 행위를 확인하고 증거 수집을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 자신의 신체를 지키기 위해선 증거 수집 외에 적절한 수단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대화를 무단 열람해 아내의 비밀을 침해했지만, 그 경위를 참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11월 검찰은 아내 B씨를 특수상해 미수 혐의로 기소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