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4시 22분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 지구 앞. 편도 3차로 도로를 달리던 54번 시내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정차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동구 무등산 국립공원(증심사)과 북구 전남공무원교육원을 오가는 버스다. 당시 운전기사와 승객 등 10여명이 타고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한 54번 버스 왼쪽으로 또 다른 버스가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도로 옆 5층 건물이 기우뚱하고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낙하물을 방지하기 위해 공사 현장을 둘러싼 보호막이 있었지만,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거대한 흙 먼지를 피우며 무너져내리는 건물이 버스를 통째로 덮쳤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주변을 지나던 차량이 줄줄이 급제동했고, 멈춰선 일부 차량은 추가 붕괴를 우려해 급히 후진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20대 남성은 “공사장 인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고, 건물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고 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왕복 7차로 도로의 절반 이상을 가로막았다. 구조에 나선 소방 당국은 사고 버스 안에서 승객 8명을 구조했다. 버스 전면 차 유리가 깨진 공간으로 빠져나온 중상자들은 전남대병원과 광주기독병원, 조선대병원 등으로 긴급 후송됐다.
콘크리트 돌덩어리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버스 내부 수색 작업에서 사망자 9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당초 생존자와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매몰자가 12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했으나, 버스 차체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매몰자들이 추가로 발견됐다.
사망자 중에는 고교 2학년 남학생(17)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대면 수업일이었지만,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려 학교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60대 곰탕집 여주인은 큰아들 생일에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집을 두 정거장 남겨두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한때 “승용차 1~2대가 건물 잔해에 함께 매몰됐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사고 당시 영상을 확인한 결과 54번 버스 1대만 매몰된 것으로 확인됐다. 버스 뒤쪽으로 접근하던 승용차 2대는 급히 멈춰 참변을 피했다. 무너진 건물에서 작업하던 근로자와 건물 앞 인도의 행인 등 다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소방 당국은 밝혔다.
철거 업체는 이날 굴착기를 동원해 건물 5층 부분을 철거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5층 건물과 비슷한 높이로 쌓은 토산(토산)에 굴착기를 올려 한 층씩 부수며 내려가는 방식으로, 안쪽부터 바깥 방향으로 건물 구조물을 조금씩 철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업체 관계자는 “철거 장비와 함께 작업자 4명이 건물 내부와 외부에 있었으나, 건물에서 소리가 나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 모두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후 건물 주변 인도를 오가는 보행자들의 통행을 막았지만, 차량이 오가는 도로 통제까지는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각적인 교통 통제 등 안전 조치가 이뤄졌다면 사상자 17명을 낸 이날 참변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시 소방본부는 관할 소방서와 인근 5~6개 소방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경보령인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광주·전남에서 140여명을 동원해 구조 작업을 벌였다. 오후 5시 10분쯤에는 중앙119구조본부와 나주소방서 대원들도 구조 작업에 합류했다.
사고 경위 조사에 나선 경찰은 10일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으로 현장 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광주경찰청은 “전담 수사팀을 편성해 안전 수칙 등 관련 규정 준수 여부와 업무상 과실 등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고 직후 학동에서 화순 방면 도로 운행이 전면 통제되고 퇴근 시간대가 겹치면서 일대 교통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