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海底)도시 vs. 해상(海上)도시. 말 그대로 바다 밑의 도시와 바다 위의 도시다. 부산과 울산이 ‘해상도시’와 ‘해저도시’ 레이스에 들어갔다. 두 도시 모두 바다를 끼고 발전한 곳들이다. 울산은 ‘해저도시’를, 부산은 ‘해상도시’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먼저 ‘선공’을 날린 곳은 울산시. 지난 달 2일 개최한 울산의 미래 해양신산업 육성을 위한 ‘미래형 해양연구시설 심포지엄’이 시작이었다. 송철호 시장은 “지역의 폭넓은 조선·해양 인프라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혁신적 해양 신산업 기술 개발을 위해 ‘해저도시’에 도전할 것”이라며 “’해저도시’를 부유식 해상풍력과 연계, 울산의 주력산업으로 안착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한국해양대 등과 공동으로 ‘해저도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해저도시’는 바다 밑에 만들어진 도시를 말한다. ‘스타트렉’ ‘스타워즈’ 등 영화·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우주도시(space colony)를 바다 밑에다 건설한 것과 비슷하다. 영화 ‘아쿠아맨’ 등에도 등장했다. 요즘은 실제 현실 속에서도 그 비슷한 존재를 체험할 수 있다. 수중 5~6m 아래 객실 몇 개를 둔 호텔·리조트나 그 안의 레스토랑·스파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괌의 ‘피시 아이 마린 파크’, 이스라엘의 ‘레스토랑 레드 시’, 두바이의 ‘아틀란티스 더 팜 호텔’, 몰디브의 수중 스파 ‘후 바펜 푸시 몰디브’, 싱가포르의 ‘리조트 월드 센토사’ 등이 그렇다. 이들 장소에선 창 너머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알록달록 색깔의 물고기들을 보며 식사를 하거나 아로마 마사지를 받는 환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하루 숙박료가 3180여만원을 넘는 등 그 비용이 상당히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해저도시’는 이들 수중호텔·레스토랑보다 훨씬 깊은 수심 아래로 내려가고 규모가 보다 넓게 확장된 개념이다. 수심으론 4~40배 가량 아래로 깊어지고 공간도 더 넓어진다. 수심 10m에 1기압씩 올라가 100m 아래로 내려가면 100t의 무게가 누르는 압력을 견뎌야 하고 빛도 사라지며 파도·조류·지진 등 환경 조건 또한 더 열악해진다. 때문에 수십~수백t 무게와 같은 수압을 견디는 재료가 있어야 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공간 구조물을 짓는 난공사도 해야 한다. 인간 주거와 시설 유지에 필요한 물자와 에너지, 산소 공급 등도 문제다.
그런만큼 해양·조선·소재·토목·건축·기계·자원·의학·기후·지질·정보통신·우주항공·로봇 등 수많은 분야의 최첨단 공학·기술들이 총동원돼야 한다. KIOST 한택희 책임연구원은 “우주와 같은 극한의 조건에서 사람들이 활동하고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하는 해저도시는 최첨단, 극한 기술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해저도시를 건설하려면 우선 고운 모래 등의 퇴적물층이 아니라 암반으로 돼 있고 지진·해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야 하고 엄청난 수압과 지진·해일 등을 견딜 고강도 신소재와 구조물 고정 기술 등이 필요하다. 빛도 도달하지 않는 수십~수백m 바다 밑에서 공간 구조물을 짓는 공사는 로봇이 한다. 육상에서 만든 구조물 모듈을 해저로 가져가 조립하는 식으로 지어진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공기와 물, 각종 장비와 장치를 가동하고 빛을 만드는 데 들어갈 에너지 생산·공급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 물은 바닷물을 음용수로 만드는 해수담수화 시설로 공급하고 에너지는 처음엔 풍력 등으로 육상에서 조달하지만 종국엔 파력·조력·해수온도차 등을 활용해 자체 해결한다. 이밖에 파도와 지진, 해일 등 해양 상황을 관측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이나 통제할 수 없는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탈출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울산시와 KIOST 등은 울산 앞바다에 내년부터 2026년까지 1단계로 수심 30~50m에 210㎥ 규모의 해저도시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이 해저도시에선 3~5명이 28일간 체류하며 연구·관측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이 단계의 해저도시를 짓는 데는 400~500억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단계(2027~2031년)엔 수심 50~200m 아래, 1500㎥ 면적에 5~30명이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확대할 계획이다.
KIOST 측은 “울산 해저도시가 예정대로 조성될 경우 세계 최고, 최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해저도시 프로젝트’엔 울산시·KIOST 등 외에 항공우주연구원·롯데건설·한국조선해양·부산대병원·KT 등 30여개 회사와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해저도시는 호텔·관광 등은 물론 심해생물·환경·물질 등 과학연구, 해양그린에너지·수소에너지 등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탄소중립공간 조성, 지진·해일·육상 재난 등 자연재해 대응 연구, 수중 감시 등 군사용, 해중 데이터 센터 설치, 수중 거주공간 확보 등 다양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해저도시는 미국이 1986년 우주인 훈련 등을 위해 플로리다 앞 바다 18m 깊이 산호초 군락에 설치한 해저과학기지 ‘아쿠아리우스’를 비롯, 독일·러시아·중국·일본·프랑스 등 세계 각국이 여러 형태로 연구와 조성을 추진 중이다. 한국해양대 이한석 해양공간건축학과 교수는 “’해저도시’ 건설은 해양신산업 창출과 해양 4차 산업혁명의 확대를 가져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산시는 해상도시를 추진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5일 빅터 키솝(Victor Kisop) UN-해비타트(HABITAT) 부사무총장과 화상회의를 갖고 부산 앞바다에 ‘해상도시’를 짓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UN-해비타트는 유엔 산하에서 인간 정주와 도시 분야를 관장하는 국제기구다. 키솝 부사무총장은 이 회의에서 “기후 위기에 선제 대응할 수 있는 해상도시 건설에 부산이 참여해달라”고 요청했고, 박 시장은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UN 측이 제안한 ‘해상도시’는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는 해안도시와 기후난민을 위한 프로젝트. 기후변화로 2100년이 되면 해수면은 지금보다 평균 1.1m 높아지고 전 세계 인구의 30%에 달하는 24억 명이 침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대비한 선제적 방책이다. 이 해상도시는 물에 뜨는 부유식(floating) 구조물 위에 정주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정육각형 모양의 유닛(생활공간)을 수십 개 만들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대형 바지선처럼 바다 위에 뜬 땅으로 만든다. 높은 파도나 태풍 등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되고 유사시에는 다른 바다 위로 마을을 이동할 수도 있다. 그 위에 에너지와 물, 식량 등을 자급자족하면서 폐수 등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자원을 재활용하는 시스템도 갖춘다. 해수면이 높아져 해안가 땅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에서 인류를 구할 현대판 ‘노아의 방주’쯤 된다.
해상도시는 바다 위에 도시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인공섬과 비슷하지만 매립 등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수질 오염 등 환경파괴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 역시 해양생태계 오염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기술로 세워지면서 풍력·태양광 등으로 에너지를 조달하고 바닷물을 음용수로 바꾸는 해수담수화와 어류·해조류 양식 및 수경재배 등을 활용한 식량 자급자족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선진 환경 친화 기술들이 적용된다.
부산의 해상도시는 항만기능이 사라지는 북항 내해 등 부산 앞바다에 약 2만㎡ 규모로 짓는다는 구상이다. 부산시와 UN-해비타트는 전문가 자문단 구성, UN 실무진 현지 답사 등을 거쳐 오는 연말 ‘파트너 도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내년쯤 해상도시 건설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 해상도시는 빠르면 2024~2025년 완공될 것으로 부산시 측은 전망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시가 해상도시를 지을 해양공간과 각종 인·허가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UN-해비타트 측이 전액 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해양대 박진희 물류환경도시인프라학부 교수는 “해상도시는 해수면 상승과 지진 등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에 적응력이 뛰어난 미래형 도시”라며 “부산은 해상도시 건설로 관련 선진기술을 선점하고 향후 신산업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상징적이며 랜드마크형 공간을 갖게 돼 국제 관광과 도시 브랜드 제고에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