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경찰청 기동 2중대 소속 김도영(21) 상경의 관물대 한쪽엔 감사패가 놓여 있다. ‘다문화 자녀 행복한 공부방 재능기부 사업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김 상경은 “지난달까지 울진경찰서에서 지역 다문화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학부모님들이 고맙다고 주신 것”이라고 16일 말했다.
울진경찰서는 2013년부터 지난달까지 ‘다문화 공부방’을 운영했다. 먹고살기 바쁘고, 국내 교육 환경에도 어두워 자녀 교육에 관심 기울이기 어려운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 청소년을 의경들이 가르치는 공간이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를 다니다 작년 9월 입대한 김 상경은 지난달 말 문을 닫은 이 공부방의 마지막 ‘의경쌤(선생님)’이다. 1983년 창설된 의무경찰 제도의 2023년 완전 폐지를 앞두고 의경들이 재배치되면서 이 공부방도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김 상경이 마지막 선생님이지만 이 공부방은 그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지난 8년간 의경 선생님 16명과 함께 이곳에서 공부한 제자 45명이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의경들은 경찰서 2층 소회의실에 마련한 공부방에서 주말마다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울진은 경북에서도 오지에 속해 학교 외에는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곳으로 꼽힌다. 의경들은 영어와 수학, 과학 등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을 맡았다.
원상우(57) 울진군다문화가족회장은 “2013년 서울대 출신인 지인 아들이 울진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한다는 얘기를 듣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게 공부방을 시작한 계기였다”고 했다. 원 회장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김광호(58) 당시 울진서 정보계장이 “한번 해 보자”고 나섰다. 김 계장은 “당시 우리 경찰서 의경 중에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명문대를 비롯해 사범대와 교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 있는 인재들이 있었다”며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고 하니, 의경들이 저마다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겪었다. 초·중·고 학생 10여 명이 공부하겠다고 나섰지만, 분위기가 산만해 공부는 뒷전이었다. 중3과 고교생 중 공부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을 뽑아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의경 두세 명이 학생 3~6명을 맡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자원봉사였지만 한 의경은 “서울서 100만원 받으며 과외할 때보다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낯을 가리던 제자들도 맛있는 간식을 챙겨주고 생일잔치를 벌여주는 의경들에게 점차 마음을 열었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다문화 가족들도 주머니를 털어 의경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전했다. 울진서는 포상 휴가증을 건네며 의경들을 독려했다.
한때 문제 학생으로 불렸지만 마음을 잡고 공부해 지방대 법대에 합격한 남학생, “의경쌤처럼 좋은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서 초등학교 교사가 돼 고향으로 돌아온 여학생도 있었다. “나도 경찰이 되겠다”며 디자인학과에서 진로를 바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
원상우 회장은 “그동안 공부방을 거쳐 간 학생들과 전역한 의경쌤들을 불러 지난 추억을 나누는 만남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며 “아이들을 도와줄 또 다른 교육 재능 기부처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