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솔뫼성지에 들장미 꽃잎을 포개놓은 모습의 건축물이 내려앉았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완공한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이다. ‘국내 천주교 역사의 성지’로 불리는 충남 당진시는 천주교 사적지를 묶어 삶의 의미와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문화 휴식 공간을 만들고 있다. /신현종 기자

지난 20일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성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司祭)이자 순교자인 김대건(1821~1846) 신부가 꼭 200년 전 태어나 자란 기와집을 바라보던 노인이 성호를 긋고 두손 모아 기도했다. ‘솔뫼’(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언덕)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나무가 우거진 성지(聖地)에 평일 오전에도 방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인천에서 온 류정호(45)씨는 “천주교 교인은 아니지만, 김대건 신부의 가르침을 함께 온 아이들이 본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성태 신부는 “김대건 신부는 최초의 양학(洋學) 학문 유학생으로서 인권과 평등 같은 근대적 의식을 먼저 습득해 조선 사회에 실현하려고 한 인물”이라며 “한국 근대의 씨앗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국내 천주교 역사의 성지

충남 당진시는 ‘국내 천주교 역사의 성지’로 불린다. 당진시는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방문하면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유네스코는 올해 ‘세계 기념 인물’로 김대건 신부를 선정했다.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세계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명사의 기념일을 선정해 알리고 있다. 당진시는 김대건 신부의 친필 서한문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도록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 생가 옆에는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지은 복합예술공간인 ‘기억과 희망’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당시 23국, 6000여명의 청년을 만난 자리다. 국비와 지방비 130억원을 투입해 지난달 20일 완공한 지상 1층짜리 건물(4750㎡)이다. 복합예술관과 광장, 산책로, 전시실 및 야외 전시장도 갖췄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다. /신현종 기자

하늘에서 본 건물은 활짝 핀 들장미 모습을 닮았다. 조선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문장(紋章)인 들장미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정영환 당진시 문화관광과장은 “지역 문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시는 솔뫼성지와 천주교 사적지를 묶어 문화관광 명소로 개발하고 있다. 교황 방한 이후 당진 천주교 사적지를 찾는 방문객은 코로나 확산 이전까지만 해도 연간 42만명에 달했다. 솔뫼성지부터 신리성지까지 이어지는 버그내 순례길(13.3㎞)을 거닐며 주요 천주교 사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당진시 합덕읍 신리는 천주교가 조선 후기 엄혹한 박해를 받던 시절에도 주민 400여명이 신자였던 교우촌이다. ‘한국의 카타콤바’(지하 교회)로 불리는 신리성지는 김대건 신부와 중국에서 조선으로 함께 넘어온 조선 제5대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가 사목 활동을 벌인 곳이다. 순례길에는 충남 서북부 지역 첫 순교자 원시장과 사촌 원시보의 생가터, 충남 최초 본당인 합덕성당, 무명 순교자의 묘 등이 있다.

솔뫼성지 안에 있는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집’ 내부 모습. /신현종 기자

당진시는 버그내 순례길과 사찰 영랑사(影浪寺)를 연계한 치유 순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 사업에 선정된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이 순례길을 걷고 템플스테이를 하며 지친 마음에 휴식을 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내년 말 서해선 복선 전철이 개통하면 수도권에서 당진 가는 길이 더 편리해질 전망이다. 충남 홍성과 경기도 화성을 잇는 서해선 복선 전철은 최고 시속 260㎞ 고속열차를 운영한다.

◇함상공원·왜목마을 등 관광지도

당진에는 천주교 성지 외에도 둘러볼 곳이 많다. 솔뫼성지에서 차로 15분가량 거리에 삽교호 함상공원이 있다. 화산함과 전주함 등 퇴역 군함 2척에 올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화산함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대형 상륙함이고, 전주함은 간첩 경비 작전과 해외 순항 훈련에 투입된 군함이다.

당진 최북단 왜목마을은 서해에서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장소다. 서해를 향해 서북쪽으로 튀어나온 지형이 왜가리의 목을 닮았다고 해서 왜목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 아산만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 국영방송 CCTV가 이곳을 찾아 일출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기지시줄다리기의 역사도 만날 수 있다.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500여년 전부터 이어온 줄다리기로, 길이 200m, 직경 1m, 무게 40t짜리 줄을 당기며 풍년을 기원하던 행사다. 김홍장 당진시장은 “천주교 역사 문화와 지역 관광자원을 묶어 관광객들이 삶의 의미와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