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청 청사. /뉴스1


“비서실에서 쪽지를 보내오면 구청에 ‘비서실 지시사항’이라는 오더를 내렸습니다. 비서실 요구를 거절하면 인사상 불이익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에 대부분 지시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방선거 캠프 출신들에게 공사가 공평하게 배분됐는지 확인해보려 하니 월별 내역서를 작성해 보고해달라고 했습니다.”

1일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신진우) 심리로 열린 은수미 성남시장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뇌물수수 등 혐의 사건 5차 공판에서는 성남시의 수의계약과 관련한 비위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성남시 현직 공무원들은 성남시장 비서실의 개입과 지시를 증언했다. 이들은 본인들이 직접 경험한 일을 진술하거나 검찰에서의 조사 내용을 확인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지난 2018년 당시 성남시 계약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중원구의 공원 터널등 납품 계약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심문이 진행됐다. 이 내용은 은 시장과 박모 당시 비서실 정책보좌관(구속 기소)의 혐의 가운데 하나이다.

두 사람은 공모해 2018년 10월 당시 성남중원경찰서 경찰관 김모씨로부터 수사 기밀을 제공받는 대가로 4억5000만원 상당의 이 터널등 납품계약 청탁을 들어준 혐의를 받고 있다.

2018년 7월 취임한 은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성남중원지역위원장으로 있던 지난 2016년 6월부터 약 1년 동안 기업대표로부터 운전기사와 차량을 무상으로 지원받아 이용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고발돼 수사를 받고 있었다.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관 김씨는 “중원구의 공원 터널등 교체 공사에 친구가 운영하는 업체의 제품을 납품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은 시장 핵심 측근인 박 정책보좌관의 약속을 받았다.

그러자 경찰관 김씨는 은 시장 사건의 수사 진행상황, 검사 지휘 사실, 경찰 송치 의견 등 주요 수사기밀을 알려줬고 주요 참고인의 진술요지, 증거자료 등이 기재된 수사결과보고서 사본도 보여줬다.

박 정책보좌관은 그 대가로 성남시 계약팀장에게 지시해 중원구의 경리팀장이 김씨가 부탁한 업체와 납품계약을 체결하도록 만들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성남시 회계과 팀장 A씨는 “은 시장 취임 이후 박 정책보좌관이 6~7 차례 비서실로 불러 직접 지시를 내렸고, 나중에는 비서실 이모 비서관을 통해 쪽지를 전달하면서 ‘간소화’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보면 ‘쪽지’에는 납품·공사 등 사업 명칭, 계약 대상 업체, 담당자 연락처 등이 적혀 있었다.

A씨는 당시 쪽지로 지시받은 내용을 터널등 납품계약을 발주한 중원구 경리팀장 B씨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B씨는 “본청 회계과의 다른 팀장이 ‘K사와 계약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했고, 조건 등에 크게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본청 계약팀장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또 계약 관련 비서실의 지시에 대한 진행 경과나 결과도 보고했다고 밝혔다. 박 전 정책보좌관이 “캠프 출신들에게 공사가 공평하게 배분됐는지 직접 확인해보려 하니 보기 편하게 월별로 내역서를 작성해 보고해달라”고 부탁해 7~8개월 동안 월별 보고도 했다고 증언했다..

또 유사한 청탁을 구청에 다시 전달할 때는 ‘(시장실이 있는) 2층 오더 사항’ 또는 ‘비서실 오더’라고 했다고 밝혔다. A씨는 다만 “청탁과 계약 내용을 정책보좌관이 다시 시장에게 보고했는지는 직접 확인할 입장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 검찰 조사에서는 “정책보좌관을 통해 시장이 최종적으로 수의계약 리스트를 보고받아 챙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또 “공채 출신 공무원들은 비서실의 오더는 시장의 오더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은 시장과 박 전 정책보좌관은 이 밖에도 다른 납품계약은 물론 경찰관 김씨가 요구한 지인의 6급 팀장 보직, 김씨의 상관이 부탁한 성남시 공무원의 사무관 승진 등을 들어준 혐의로도 기소됐다.

은 시장은 박 전 정책보좌관으로부터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휴가비, 출장비, 명절 선물 등의 명목으로 467만원의 현금과 와인을 제공받은 혐의(뇌물수수)도 받고 있다.

은 시장은 지난 1차 공판에서 “경찰관들의 부정한 청탁과 관련한 보고를 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박 전 보좌관은 혐의를 인정했다.

이날 증인으로 나선 성남시 공무원 3명과 피고인석 은 시장 사이에는 검사의 요청으로 가림막이 설치됐다. 은 시장과 박 전 정책보좌관 사건에 관련된 경찰관 김씨는 공무상비밀누설, 수뢰후부정처사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