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예 작가 정재춘씨. /정재춘

조선의 대표적인 전투함인 판옥선, 옛 소련(현 러시아) 최초의 항공모함 민스크호, 미국 최고의 전함인 USS뉴저지호 등 함선(艦船)모형들이 전시된다. 이 모형들은 나무를 깎은 작은 재료들을 사용해 실물과 가깝게 정교하게 제작한 것들이다.

목공예 작가 정재춘(63)씨는 30일부터 5월4일까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전시장에서 함선모형 특별전’을 연다.

전시회에는 정재춘씨가 제작한 함선 모형 8점과 헬기, 수송기, 공격기 등 기타소품류 8점을 포함해 모두 16점의 모형이 전시된다. 함선은 크기가 보통 1m50㎝에서 2m 정도에 이른다.

정재춘씨가 재현한 조선 시대 판옥선 '천자일호좌선'. 길이만 4m가ㅏ 넘는 대작이다. /정재춘

목공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40년 경력의 정재춘씨가 제작한 함선 모형 중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조선 왕조 최초의 전선(戰船)인 판옥선(板屋船) ‘천자일호좌선(千字一 號座船)’이다. 그의 모형 작품 중 가장 크다. 길이만 4m20㎝에 이르러 위용을 짐작케 한다.

판옥선은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 명종 때까지 사용하던 1층 구조의 평선(平船)에 지붕을 덮어 2층 구조로 만든 함선이다. 노를 젓는 병사들은 아래층에, 공격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윗층에 배치해 서로 방해받지 않고 전투를 할 수 있다.

또 배가 높아 왜군들이 배에 오를 수 없고 튼튼해 임진왜란 당시 많은 활약을 했다.

정씨는 이 배를 재현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고증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제작한 판옥선 ‘천자일호좌선’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재현된 판옥선 모형보다도 실물에 가깝게 재현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작기간만 3년이 걸렸다.

옛 소련 최초의 항공모함 '민스크호' 모형. /정재춘

정씨의 최고 역작은 뭐니뭐니해도 옛 소련 최초의 항공모함인 ‘민스크호’다.

1978년 취역한 민스크호는 소련 연방이 해체된 이후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1995년 한국기업이 고철로 인수했다가 1998년 다시 중국으로 팔려가는 수난을 겪은 비운의 함선이다.

정씨는 평소 민스크호에 매료돼 있던 중 한국 수입업체가 인수했을 당시 몇번의 거절 끝에 가까스로 촬영 허가를 받은뒤 모형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특유의 세공술로 재현한 민스크호의 모형 함상에는 탑재된 항공기와 함포 등 각종 화력이 실물처럼 오밀조밀하게 축소·배치돼 있다.

또 함상에 설치한 난간까지 빠뜨리지 않고 일일이 구멍을 뚫고 머리카락 굵기밖에 되지 않은 가늘디 가는 나무 조각을 끼워 만들었다. 더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하갑판이나 천장 등 구석진 곳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

이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극세공술로 만들어낸 모형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려 12년이라는 세월을 민스크호 제작에 매달린 끝에 얻은 결실이다.

미국 최고의 함정으로 평가받는 'USS 뉴저지호'의 모형. /정재춘

그밖에 조선 전통 비무장 소형 군선인 ‘사후선’, 미 해병대의 기동타격함선인 ‘USS 와스프’, ‘USS 뉴저지호’, 구 소련 항모인 ‘노브로시스크호’, ‘판옥선’ 등이 전시된다.

함선과 함께 미 해군 훈련 및 재난 수송용으로 사용됐던 ‘HIV 범용 헬리콥터’, 대잠 헬러콥터인 ‘카만 SH-2 시프라이트’, 공격기인 ‘A-10 선더볼트’, 벤츠사가 10대 한정으로 생산했고 히틀러가 관용차량으로 애호했다는 ‘메르세데스 벤츠 770K’ 등도 모형으로 선보인다.

20대 초반 해군 현역병으로 복무할 때 함선 모형 제작에 매료돼 그때부터 전문가의 지도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외길을 걸었다. 취미삼아 시작한 일이 필생의 업이 된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특이한 점은 설계 도면도 없이 남겨진 그림이나 사진만 보고 실물과 똑 같은 형태로 모형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까지 제작한 모형 작품을 단 한 점도 경매시장에 내놓거나 판매한 적이 없다. 항상 호주머니가 가볍지만 제작비가 필요할 때면 잠깐 건설현장에 나가 목수일을 한다.

지금까지 수상경력도 적지 않다. 해군참모총장배 모형 함선 경연대회에 출전해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5번의 수상경력이 그의 뛰어난 솜씨를 증명한다.

또 2004년에는 KBS 대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판옥선 모형과 일본 전선 모형을 제작했고, 2006년에는 SBS 대하 드라마 ‘연개소문’을 제작할 때 돛대가 달린 고려 군선(軍船)과 중국 수나라 군선 모형 재현에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