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아닙니다, 병들어 죽은 소나무입니다 - 지난 1일 경남 밀양시 상남면 인산(해발 213.9m)에서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를 입은 소나무들이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붉은색으로 변해 있다. 이 산의 소나무 거의 절반이 피해를 입은 모습이다. 5일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를 입은 나무는 38만그루로 작년 31만그루에 비해 22.6% 증가했다. 5월 이후 피해는 정확한 집계가 없지만 환경 단체인 녹색연합은 올해 전체 피해 나무 수가 200만그루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밀양=신현종 기자

“올여름부터 소나무가 죽더니 이제는 단풍 든 것처럼 온 산이 벌겋게 됐어요. 이러다가는 소나무를 오래 못 볼 거 같아.”

지난 1일 경남 밀양시 상남면에서 만난 주민 김상수(75)씨가 인산(해발 213.9m)을 가리키며 걱정스레 말했다. 김씨가 가리킨 곳엔 말라 죽어 갈색으로 변한 소나무 수십 그루가 보였다. 본지 기자가 드론을 200m 상공까지 띄워 인산 전체를 촬영하자 붉게 고사한 소나무 수백 그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소나무 재선충(材線蟲)병 피해를 본 나무다. 이곳뿐 아니라 밀양 지역에서는 마을 인근과 도로변 산 등 곳곳에서 재선충병으로 죽은 나무들이 보였다.

2일 찾은 경북 포항시 남구 고금산 일대 숲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푸른색 솔잎 대신 갈색과 붉은 잎으로 절반 이상 뒤덮여 있었다.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려 썩어 부서지거나 쓰러진 나무가 수두룩했다. 기자가 쓰러진 나무 중 하나를 밟았더니 가지와 뿌리가 폭삭 부서져 발목이 접질릴 뻔하기도 했다. 병에 걸린 소나무는 껍질을 손으로 떼어내자 비스킷처럼 쉽게 부서졌다. 고금산에는 산림청이 발급하는 ‘병해충 밴드(소나무가 병 등에 감염됐다는 표시)’를 두른 소나무가 수백 그루나 됐다.

줄어들던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가 올해 다시 늘어나면서 산림 당국과 지자체에 비상이 걸렸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크기가 약 1mm인 실 모양의 벌레 재선충이 소나무 조직의 수분 통로를 막으며 나무가 말라 죽는 병이다. 재선충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에 달라붙어 다른 나무로 이동하며 병을 확산시킨다. 현재까지 치료 약도 없다.

소나무가 단풍이 들 리 없지요 - 지난 1일 오후 경남 밀양시 상남면에서 한 주민이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를 입어 붉은색과 갈색으로 변한 소나무가 가득한 인산(해발 213.9m)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소나무는 사철 잎이 푸른 상록수인데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색깔이 변했다. /신현종 기자

5일 산림청에 따르면,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 나무는 2018년(2017년 5월~2018년 4월) 69만그루, 2019년 49만그루, 2020년 41만그루, 지난해 31만그루로 계속 감소하다 올해 38만그루로 늘었다. 지난해보다 22.6% 증가했다. 피해 발생 시·군·구도 지난해 131곳에서 올해 136곳으로 늘었다. 지역별로는 경북 11만3668그루, 경남 9만6267그루로 전국 피해의 절반 이상이 이 지역에 집중됐다.

산림청은 피해 나무 수를 매년 4월 기준(지난해 5월~올해 4월)으로 집계한다. 이 때문에 올해 5월 이후 피해는 정확한 집계가 없다. 하지만 환경 단체인 녹색연합은 올해 전체 감염 나무 수가 200만그루로 대폭 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장 피해가 컸던 2014년 218만그루와 비슷한 수치다.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부산 기장군부터 울산, 경주, 포항시까지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들이 단풍 든 것처럼 보인다”며 “자체 조사 결과 이 일대만 50만그루, 전국은 200만그루가 피해를 볼 것 같다”고 했다. 산림청 관계자도 “현장 조사 결과 피해가 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백두대간까지 위협하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올해 안동에서 발생한 재선충은 봉화군 일대까지 북상했다. 백두대간과 7~10km 떨어진 이곳이 뚫리면 최악의 경우 금강송 주산지인 울진과 강원 삼척, 태백시까지 번져 막대한 산림 자원 손실이 불가피하다. 경북도는 영주, 봉화를 방어선 사수 지역으로 정하고 봉화에서 감염된 소나무 21그루의 반경 20m 안 소나무를 모두 베어냈다.

산림청과 지자체는 올해 재선충병 피해가 늘어난 이유로 이미 감염됐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나무를 살피는 ‘예찰’을 제대로 못 한 점을 꼽는다. 방제 예산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로 현장 인력 투입을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 나무를 조사하는 활동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예산은 2017년 876억원에서 지난해 650억원으로 26% 줄었다. 기후 온난화가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정찬식 박사는 “따뜻한 날씨에 솔수염하늘소의 활동 반경이 넓어진 것이 감염 확산과 연관성이 있다”고 했다.

산림청은 지난달 28일 광역지자체 담당자 등과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산림청은 이달부터 내년 4월까지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실행 계획을 세워 시행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감염된 소나무는 베어내고, 드론을 활용한 예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요 지역엔 예방 나무 주사도 놓을 계획이다.

김동순 제주대 식물자원환경전공 교수는 “재선충병은 나무 한 그루에 매개충이 수백 마리씩 번식해 감염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며 “올해 확산세를 못 잡으면 과거 십 수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만큼 철저한 방제가 중요하다”고 했다.

/밀양=김주영 기자, 포항=이승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