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마을 입구에는 ‘환영, 제주광역소각시설 설치 최종 입지 상천리 확정’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80여 가구 17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농촌 마을 주민들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상천리는 지난 3월 제주도의 신규 광역 폐기물 소각시설(쓰레기 소각장) 입지 공모에 응모해 다른 마을과의 경쟁을 거쳐 지난 9월 최적지로 선정됐다.
마을 주민 고병수(61)씨는 “소각장이 혐오 시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반대하는 주민도 일부 있었지만 다른 지역 소각장을 둘러보니 악취나 오염물질 관리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것을 확인했다”며 “소각장이 운영되면 오지 마을인 상천리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우혁(51) 상천리 이장은 “우리 마을은 해발 380m 산간 지역이라 농사짓기 불리한 여건”이라며 “소각장에서 나오는 폐열로 한라봉·천혜향·망고 같은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는 유리 온실을 하면 연료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 쓰레기 소각장과 반려동물 장묘시설이 마을의 자발적 유치로 확정되면서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고 있다. 쓰레기 소각장 등 혐오 시설은 주민 반대로 사업 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게 일반적인데 오히려 주민들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시설로 보고 스스로 유치에 나서 부지가 확정된 것이다.
제주도는 11일 신규 광역 폐기물 소각시설 입지로 선정된 상천리를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지난 9월 광역 폐기물 소각시설 입지 공모를 통해 상천리를 1순위(89.5점)로 결정했다. 지난 3월 공모 당시 상천리 외에도 중문동과 상예2동 등 3개 마을이 응모했는데 상천리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강명균 제주도 생활환경과장은 “과거에는 주민과의 갈등 때문에 소각장 입지 선정에만 수년이 걸리기도 했다”며 “공모를 거쳐 6개월 만에 입지를 선정한 것은 큰 변화”라고 했다. 이번에 제주도가 추진하는 광역 폐기물 소각시설은 하루 380t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2025년 착공해 2029년 말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제주도는 주민 반대로 사업이 무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을 총회를 거쳐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공모 조건으로 내걸었다. 청년회, 부녀회 등 마을 자생 단체가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확약서도 제출하도록 했다.
대신 경제적 혜택을 약속했다. 제주도는 광역 폐기물 소각시설이 들어서는 마을에는 약 260억원 규모의 마을 발전 기금을 지원해 마을회관·복지회관·목욕탕 등 주민 편익 시설을 설치하도록 했다. 또 매년 폐기물 반입 수수료의 10%(3억~5억원)를 기금으로 조성해 주민 소득 증대와 장학 사업 등에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경제적 혜택을 준 것이 쓰레기 소각장 유치에 마을이 자발적으로 뛰어들도록 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최우혁 상천리 이장은 “소각장 유치를 통해 받는 인센티브로 마을 편의 시설 등을 갖춰 청년들이 돌아오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 3년간 설립 부지를 찾지 못해 표류해오던 제주 지역 동물 장묘시설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가 지난 1월 마을 총회를 거쳐 자발적으로 유치에 나서면서 부지가 확정됐다. 현재 제주에는 동물 장묘시설이 없다. 부지가 확정되자 제주도는 어음2리에 ‘반려동물 복지문화센터’를 조성하기 위한 기본 설계에 들어갔다. 총 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4년까지 완공한다는 목표다. 센터에는 동물 장묘시설, 반려동물 공원 등을 만든다. 양권범 어음2리 이장은 “시설을 위탁 운영해 마을 수익 사업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강진영 제주연구원 탄소중립지원센터장은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을 주민들이 적극 유치에 나선 것 같다”며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제주=오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