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변. 강변도로를 따라 있는 미술관, 숙박업소, 식당 사이로 뼈대만 있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기둥의 녹슨 철근이 드러나고 일부 골재가 떨어져 나갔다. 지하 1층, 지상 5층에 51실 규모의 숙박업소로 계획됐던 이 건물은 28년째 방치되고 있다. 1990년 착공해 골조 공사만 끝내고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1994년 공사가 중단됐다. 오랜 기간 방치된 탓에 건물과 그 주변에서는 쓰레기 더미 등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등 관리가 안 되고 있다. 마을 주민 김모씨는 “주말 나들이객들이 북한강 일대를 많이 찾는데, (공사 중단된 건물이) 버려진 흉가처럼 나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했다.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에는 20년째 버려진 아파트 단지가 있다. 1998년 착공했지만 자금난으로 사업 주체가 몇 번 바뀌고 부도가 나면서 2002년 공정률 50%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16층 아파트 5동(930가구)이 골조 공사만 끝내고 방벽처럼 남아있다. 인근 주민들은 교육·주거 환경을 해치고 우범 지대가 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용인시 처인구에도 골조 공사는 거의 완료된 상태에서 20년 가까이 방치된 10동(154가구) 아파트 단지가 있다.
경기도 곳곳에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건축물이 행정 당국과 주민의 골치를 아프게 하고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 등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2일 경기도에 따르면 ‘공사 중단 장기 방치 건축물의 정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근거해 정비 추진 대상인 건축물은 모두 32동이다. 이는 공사 중단 기간이 2년 이상인 건물을 대상으로 국토교통부가 3년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전문 기관에 실태 조사를 맡겨 선정한 목록이다.
경기도에 있는 장기 방치 건축물 32동은 14시·군에 걸쳐 있다. 용인이 11곳으로 가장 많고 과천(4), 연천(3), 파주·양평(2) 등의 순으로 많다. 유형별로 보면 절반이 넘는 17곳이 아파트·연립 등 공동주택이다. 숙박시설(콘도미니엄, 여관, 가족 호텔), 판매 시설, 종교 시설, 청소년 수련 시설 등도 있다. 20년 이상 방치된 건축물도 7곳이나 된다. 공사 중단 사유는 자금 부족이나 부도가 27건으로 절대 다수다.
일선 기초자치단체는 지역별 여건, 입지 특성, 권리 관계 등을 파악해 분쟁 조정, 자진 철거 유도, 안전 조치 명령 같은 조치에 나서고 있다. 특히 붕괴·화재 등 안전사고나 범죄 발생 위험이 있거나 주거 환경에 현저한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건축물은 철거 명령도 가능하다. 자치단체가 철거 명령을 하면 건축주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6개월 이내에 철거해야 하고, 행정 당국이 직권으로 철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강제 처분이 쉽지 않고 소송 등의 문제 때문에 실제로 직권으로 철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욱이 건축주·시행사·시공사, 채권자·채무자의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실마리를 풀기가 쉽지 않다. 용인시 관계자는 “철거나 보상을 두고 법적 다툼이 불가피해 적극 개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현장 조사를 거쳐 우범 지대가 될 우려가 있으면 울타리와 잠금장치를 설치하도록 하는 등 안전 관리 위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랜 기간 방치되다 해결된 사례도 일부 있다. 경기 안양시 도심 안양역 앞 상업 지역인 ‘안양 1번가’에 24년 동안 방치됐던 대형 쇼핑몰 ‘원스퀘어’는 최근 철거를 시작했다. 지하 8층, 지상 12층에 연면적 약 3만㎡인 이 건물은 1998년 착공 2년 만에 IMF 사태 등의 여파로 시행사가 부도 나면서 외부 골조만 세우고 공사가 중단됐다. 그러나 경매를 거쳐 인수한 건축주가 안양시와 협의한 끝에 올해 9월 자진 철거를 결정했다. 지금은 가림막을 설치하고 해체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 4월 말 완료 예정이다.
홍일영 경기도 건축안전팀장은 “장기 방치 건축물은 도시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주변 상권 활성화를 저해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며 “다만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결하기는 어렵고 중앙·지방정부는 물론 건축주와 지역 주민 등이 함께 개선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