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과 충청권 지자체들이 국가정원 조성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여러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국가정원을 조성하려는 것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국가정원을 관광 명소화해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정원 추진 경쟁이 지역 갈등으로 번질 수 있고, 자칫 지자체 예산 부담을 키우는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하봉 정상(해발 1380m)에서 바라본 풍경. 정선군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알파인 경기가 펼쳐졌던 가리왕산 일원의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선군

국가정원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정원으로 자연 환경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정원은 정부가 ‘수목원 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접 지정해 운영하거나 지자체가 운영 중인 지방 정원 가운데 승격 심사를 통해 국가정원으로 지정한다.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 운영비를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다. 현재 등록된 국가정원은 2015년 1호 국가정원이 된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 2019년 지정된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등 두 곳이다. 국가정원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크다. 전남대 연구에 따르면 순천만 국가정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연간 4116억원으로 추산된다. 태화강 국가정원도 연간 110만명이 방문해 1600억원이 넘는 생산 유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앞다퉈 산·호수·강·늪지 등을 활용한 국가정원 조성을 추진 중이다. 강원 정선군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경기가 열렸던 가리왕산을 올림픽 국가정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정선군 관계자는 16일 “올림픽 유산을 활용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으로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국가정원으로 지정되길 바란다”고 했다. 강원 춘천시도 의암호에 있는 중도 일대를 ‘호수 국가정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춘천시는 “중도 일대를 지방 정원으로 만든 뒤 국가정원으로 승격시켜 정원 문화 중심지로 키울 방침”이라고 했다.

대전시도 지난 1월 대전 서구 흑석동 ‘노루벌 국가정원’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시는 노루벌 일원 123만㎡에 총사업비 1300억원을 들여 6가지 주제 정원과 문화센터, 관리 시설을 갖춘 지방 정원을 2027년까지 만들고, 국가정원 승격에 도전할 계획이다. 전국 최고 도시 녹지율(52%)을 자랑하는 세종시는 세종중앙공원 일원의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한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에는 호수 공원, 중앙 공원, 국립세종수목원이 있다. 세종청사 옥상에는 옥상 정원도 있다. 이 정원은 면적이 7만9194㎡로 2016년 세계에서 가장 길고 큰 옥상 정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세종시는 이런 시설을 활용해 2025년 ‘국제금강정원박람회’를 개최한다. 이후 세종중앙공원 일대를 지방 정원으로 만들고 국가정원 승격을 추진할 방침이다.

충남 아산시 점양동 신정호에 추진 중인 지방정원 건설 사업 조감도. 아산시는 문화·예술 공간이 어우러진 지방정원을 만들고, 오는 2030년까지 국가정원 승격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산시

충남 공주시, 부여군, 청양군은 공동으로 ‘금강 국가정원’ 조성에 나선다. 공주 죽당지구(50만㎡), 부여 군수지구(130만㎡), 청양 동강지구(50만㎡) 등 금강변에 총 1000억원을 들여 지자체별로 지방 정원을 만든 뒤, 이를 묶어 금강 국가정원으로 승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충남 아산시도 지난해 12월부터 255억원을 들여 신정호 일대에 지방 정원 조성을 하고 있다. 아산시는 지방 정원에 문화·예술 공간도 함께 만들어 국가정원으로 지정 받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 간 경쟁이 과열되자 경쟁력이 낮은데 정원 조성에만 급급할 경우 실효성 없이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인접한 지자체끼리 경쟁하다 국가정원 지정에 실패할 경우 재정 형편이 열악한 지자체의 예산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국가정원 지정 권한을 가진 산림청 관계자는 “지자체들은 국가정원 승격을 기대하지만 국가정원은 시설뿐 아니라 관리 상태, 체험·교육 프로그램, 식물 종 구성, 이용자 만족도 등을 종합 평가하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윤영조 강원대 생태조경디자인학과 교수는 “정원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생활 속 정원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채 갑자기 수만 늘리는 것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