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전남 화순군 이서면 동복댐. 45m 높이의 댐 구조물 상부에서 내려다본 동복호의 비탈면이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 물속에 잠겨 있던 운동장 크기의 가장자리는 바짝 마른 상태였다. 이날 동복호의 저수율은 19.0%로 작년 같은 시기 39.0%의 절반 수준이었다. 식수 전용 댐인 동복댐은 광주광역시 시민 143만명 중 86만명(60%)에게 마실 물을 공급한다. 하지만 지난해 봄부터 1년 넘게 비가 충분히 오지 않아 동복호 저수율이 급락하고 있다. 최하열 광주상수도본부 동복관리장은 “이맘때면 저수율이 보통 40% 안팎을 기록했다”며 “1985년 댐을 건설한 이래 3월 최저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 지역 최대 상수원으로 꼽히는 전남 순천시 주암호의 저수율도 20일 현재 21.5%에 불과하다. 작년 같은 시기 38.9%의 절반 수준이다. 광주와 전남 11시·군에 식수를 공급하고, 여수·광양산단 기업에 공업용수를 제공하는 주암호는 가뭄 때문에 곳곳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광주시 관계자는 21일 “앞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5월 중 제한 급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광주·전남 등 남부 지역을 덮친 50년 만의 가뭄에 광주시에서 제한 급수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광주·전남 지역의 최근 1년간(2022년 2월 2일~2023년 2월 1일) 누적 강수량은 896.3㎜로 평년의 64.6% 수준이다. 이는 1973년 이후 가장 적다. 최근 6개월간 광주·전남 누적 강수량도 395.5㎜로 평년의 66.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동복호 저수율은 작년 3월 40%가 무너진 뒤 약 1년 만에 20% 아래까지 주저앉았다. 광주시는 동복호 하루 물 공급량을 평시 28만t에서 최근 13만t까지 줄이는 ‘생산량 조절’에 들어갔다. 나머지 부족분은 영산강 등에서 끌어다 쓰고 있다. 광주상수도본부 관계자는 “짧은 기간에 100㎜ 규모의 폭우가 내려야 그나마 해갈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에선 지난해 10월 말부터 ‘물 절약’이 일상이 됐다. 수도밸브 수압 낮추기, 모아서 빨래하기, 샤워 시간 절반 줄이기, 양변기 수조에 물병 넣기 등이다. 물을 하루 48만t 쓰던 광주 시민은 최근 43만7000t(8.8% 절감)까지 소비량을 줄였다. 하지만 앞으로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제한 급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침에 따라 상수원 저수율이 7%에 접어들면 제한 급수에 들어가야 한다. 광주시는 그 시점을 5월 중으로 예상하고 있다. 광주시에서 가뭄으로 인한 제한 급수는 1992년 12월 이후 없었다.
광주 동구에 사는 안현아(50)씨는 “아이들이 올해부터 샤워 시간을 종전 15분에서 5분으로 줄였다”며 “정해진 시간대에만 수돗물이 나오는 제한 급수는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상수원의 저수율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제한 급수는 막겠다”고 했다.
전남 완도 등 일부 섬 지역은 이미 제한 급수가 작년 5월부터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완도군 노화읍 넙도 내리마을 이영심(63)씨는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이 나온다”며 “마음껏 샤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단지인 여수국가산단과 철강 업체들이 입주한 광양국가산단은 주요 용수 공급원인 주암호 물이 마르자 작년 11월부터 섬진강 물을 끌어쓰고 있다. 특히 업체들은 공업용수 절감을 위해 올 하반기 예정된 공장 정비를 상반기로 앞당기는 등 생산 일정 조정에 나섰다. 공장 정비에 들어가면 공장 가동을 멈춰 공업용수 사용이 절감된다. 여수산단 GS칼텍스는 3~5월 3개월간 공장 가동을 멈추고 공장 정비에 돌입했다.
농업용수 확보도 비상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광주·나주·장성·담양호 등을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전남 농업용수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52.6%(평년 68.2%)를 기록하고 있다. 전북도 평균 저수율이 57%(평년 76.5%) 정도다. 5~6월 모내기 철까지 가뭄이 계속되면 일부 지역에서 농업용수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양파 등 일부 밭작물은 이미 가뭄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0일 전북 임실군 임실읍의 한 양파 밭은 겨우내 이어진 가뭄에 양파 줄기 끝이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주민 김모(65)씨는 “양파 밭에 물을 댈 수 없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속된 가뭄에 바다로 유입되는 강물이 줄어들면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에서 나는 낙지와 꼬막 등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남해수산연구소 관계자는 “영양 물질(인·질소)이 하천수에 섞여 충분히 바다에 유입되지 않아 식물성 플랑크톤이 줄어들면서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는 낙지와 조개 등 갯벌 생물의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전남 강진군 수협의 낙지 위판액은 2021년 39억원에서 지난해 31억원으로 8억원이 줄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중앙정부와 물관리 협업 체계를 갖춰 가뭄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주민들도 생활 속 물 절약에 동참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