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아야 네가 먼저 가면 어떡하니. 엄마는 어찌 살라고. 안 돼.”
11일 오전 8시 30분 대전 서구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의 한 빈소. 지난 8일 오후 대전 서구의 한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인도를 걷다가 갑자기 덮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등진 배승아(9)양의 발인식이 열렸다. 발인식이 열리기 30분 전 빈소 안 영정사진 앞에는 발인하는 날에도 가끔씩 들르는 조문객이 놓고 간 조화가 쌓여 있었다.
배양의 어머니(50)와 오빠(26) 등 유족들은 승아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날벼락이 치듯 잃은 어머니는 딸의 체취가 아직 남아 있는 베이지색 돼지 인형을 가슴에 꽉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배양의 오빠는 빈소 한쪽 구석에 기대앉아 멍하니 동생 영정사진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승아는 두 남매를 건사하기 위해 매일같이 바빴던 엄마를 위로한다며 틈틈이 유튜브를 보고 개인기를 연습해 엄마를 웃게 만들던 살가운 딸이었다고 한다. 사고 당일 승아는 친구들과 함께 집 근처 생활용품점을 다녀오던 길에 인도로 덮친 음주운전 차량에 갑작스럽게 변을 당했다.
사고 나기 15분 전에 “친구들과 조금만 더 놀다 들어가겠다”고 전화한 것이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는 배양 오빠는 “다음달 생일을 앞둔 동생이 침대를 갖는 게 소원이라고 해 돈을 모아 사주려 했는데 끝내 선물하지 못하게 돼 한으로 남게 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발인이 시작되자 빈소 안은 유가족들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발인식은 기독교 예식에 따라 치러졌다. 가족과 친지, 배양 가족이 다니던 교회 교인 등 20여 명이 발인식에 참석해 승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기도 후 찬송가를 부르는 내내 승아 어머니는 슬품에 북받쳐 한마디도 따라부르지 못했다. 눈물만 뚝뚝 흘리던 어머니는 힘겨운 듯 아들의 손을 붙잡고 간신히 버텼다.
예식이 끝나고 영정사진을 든 오빠가 앞장서 빈소에서 나와 운구차로 향하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흐느끼며 승아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어머니는 빈소에서 계단을 올라 운구차로 가는 40m 거리를 힘겹게 걸으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승아가 누워있는 관이 있는 곳에서 한동안 관을 내보내지 못하던 유족들은 오열과 탄식을 쏟아냈다.
어머니는 “우리 딸 어떡해” “어쩌면 좋아” “우리 딸 멀미해요. 천천히 똑바로 들어주세요”라고 외치며 목놓아 울었다. 어머니는 장지로 향하는 운구차에 딸의 관이 실릴 때 “안 돼! 안 돼!”하며 통곡했다. 운구차 출입문을 한동안 오르지 못하던 어머니는 가쁜 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도 어머니는 딸의 돼지 인형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장지로 떠나는 운구차에 실리던 승아양 영정 사진은 예쁜 머리띠를 두르고 양 갈래로 늘어뜨린 머리를 한채 환하게 미소짓고 있어 침통한 주변 분위기를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배양은 화장을 한 후 대전추모공원에 안장돼 짦은 생을 마감했다.
배양을 숨지게 하고 다른 어린이 3명을 다치게 해 구속된 전직 공무원 A(66)씨는 사고 당일 대전 중구 태평동 한 노인복지관 구내식당에서 지인들과 만나 소주 1병을 마신 뒤, 혈중알코올농도 0.108%로 면허취소 수준인 상태로 둔산동까지 5.3㎞가량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 그는 앞선 경찰 조사에서 “소주 반병 정도 마셨다”고 했다가 다시 “소주 1병을 마신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배양 유족은 이날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고 법정 최고형을 원한다”며 “제2의 승아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처벌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0년 3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13살 미만 어린이를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하면 ‘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