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오후 3시쯤 경북 울릉군 울릉읍 두리봉 해발 700m 지점. 켜켜이 쌓인 낙엽을 밟으니 죽 미끄러졌다. 낙엽 아래엔 밥상만한 얼음덩이가 군데군데 있었다. 경사가 80도쯤 되는 절벽. 등산복 차림의 남자 1명이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한 손으로는 밧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바위 틈에서 자란 풀을 뜯어 허리춤 커다란 주머니에 담고 있었다. 남자가 몸을 움직일때마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돌무더기가 굴러 떨어졌다.

등산복 차림을 한 울릉군 주민이 지난달 20일 오후 울릉읍 성인봉 인근 해발 700m 높이의 산 절벽에 매달려 명이를 채취하고 있다. /권광순 기자

산길을 따라 들어가다 70대쯤 돼 보이는 할머니 3명과 마주쳤다. 머리엔 수건을 둘러썼고, 허리엔 절벽 남성처럼 불룩한 주머니 하나씩을 매고 있었다. “많이 따셨느냐”고 물으니 한 할머니가 “20kg 채우려면 아직 멀었어. 그런거 물으면 안돼” 하며 웃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우리는 높은데도 못올라가잖아. 젊은 남자들 절반도 못해” 하고 말했다.

울릉군민들에게만 허락되는 자연산 ‘명이’ 채취 현장이다. 지난달 1일부터 20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9시간만 허용됐다. 울릉도에 거주한 지 3년 이상되고, 안전교육 3차례를 이수해 허가를 받은 사람만 울릉도내 국유림 1400ha에서 채취가 가능하다. 올해 참가자는 750명, 울릉군민(2022년 기준 8996명)의 8.3%에 이른다. 2021년 684명, 지난해 705명 등으로 매년 느는 추세다.

✔ 산마늘, 울릉도선 춘궁기 命 잇던 ‘명이’

명이의 정식 명칭은 산마늘이다. 산나물 중 유일하게 마늘 맛과 향이 나서 산마늘로 불리는데, 울릉도에선 춘궁기에 명(命)을 이어준다고 해서 명이나물이라고 불려왔다. 매년 3~4월 눈이 녹지 않은 울릉도의 해발 700m 이상되는 고(高)지대, 저온 다습한 곳에서 자라는 게 특징이다. 오래 저장할 수 없어 대부분 간장 등에 절여 장아찌나 김치로 먹어왔다.

1990대부터는 울릉도에서도 자연산 명이 씨를 뿌려 밭 재배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육지로 반출돼 강원도와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으로 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산마늘 생산량은 2020년 911.45t, 2021년 1042.86t으로 집계됐다. 생산액도 같은 기간 120억3442만원에서 152억4883만원으로 늘었다. 이중 절반 가량인 450~550t이 강원도에서 난다. 최근엔 중국산 산마늘도 수입되고 있다.

울릉도 명이 잎은 둥글고 넓다. /홍릉수목원

울릉도 자연산 명이는 밭이나 육지에서 자란 산마늘과는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는 게 음식전문가들 평가다. 기후와 토양 등 재배 환경이 달라 품종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자연산 명이는 잎이 둥글지만 재배 산마늘 잎은 가늘고 길다. 가격도 kg당 1만7000~2만원으로, 일반 산마늘(13000원)보다 30~50% 가량 비싸게 팔린다.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식품공전(국내 식품의 공통기준 및 규격)에서 일반 산마늘과 울릉산마늘을 별개의 품종으로 구분했다. 울릉군이 집요하게 구분해 달라고 요청한 결과였다. 이후 울릉군은 ‘명이’ 혹은 ‘명이나물’이라는 명칭을 다른 산마늘이 못쓰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귀해진 명이... 채취 경쟁 뜨거워

이처럼 귀해지다보니 채취 경쟁도 치열하다. 채취 허가 기관인 울릉군산림조합은 해안 절벽이나 급경사지 채취를 금지하고, 2인 이상 동반 입산을 의무화했다. 채취량도 1인당 하루 20kg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산림조합 관계자는 “더 많이 따려고 위험한 곳에 올라가거나 해가 졌는데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몰래 캐는 주민들이 있다”며 “제대로 통제가 안돼 안전사고도 종종 일어난다”고 했다. 주민 고모(69)씨는 “20일만에 400만~500만원을 벌 수 있는 기회이다보니 너도나도 달려든다”며 “채취량이 넘으면 바위 틈에 숨겨놨다가 채취 기간이 끝난 뒤 몰래가서 가져 오기도 한다”고 했다.

울릉군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명이 채취 중 실족사한 사람이 26명이나 된다. 안전사고로 다친 사람도 100여 명에 달했다. 작년 3월엔 울릉군 서면에서 명이 채취를 하던 70대 후반 할아버지가 바위에서 추락해 숨졌다.

지난해 8월 울릉군 직원들이 헬기에서 울릉읍 성인봉 일원에 '명이' 씨를 뿌리고 있는 모습. /울릉군

✔ 자원 보전 위해 씨 구해 ‘헬기 파종’

울릉군은 자연산 명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이다. 2021년부터는 명이 씨앗을 구해 헬기로 산지에 뿌리고 있다. 작년까지 총 7t을 파종했다. 3~4년 후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울릉도만의 자원 보전을 위한 조치다.

울릉군은 또 이탈리아에 본부가 있는 국제슬로푸드생물다양성재단의 ‘맛의 방주’ 등재를 추진 중이다. 이 재단은 1996년부터 멸종 위기에 놓인 종자나 음식문화유산을 찾아 기록함으로써, 자원 소멸을 막고 세계음식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맛의 방주’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남한권 군수는 “자연산 명이가 급격히 줄고 있어 헬기 파종을 도입했고, 울릉도 명이만이 갖고 있는 우수성을 알리고 기록하기 위해 국제슬로푸드 ‘맛의 방주’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비슷한 산마늘이 여기저기서 나더라도 울릉도 명이만의 맛과 향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