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가 시비 250억원을 들여 국도변 야산에 30~40m 높이의 기업인들의 대형 흉상(오른쪽 사진)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러시모어산 대통령 조각(왼쪽 사진)과 같은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울산시

울산시가 시비 250억원을 들여 울산 출신이거나 울산에서 기업 활동을 벌인 기업인들의 초대형 흉상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31일 밝혔다. 시는 울산의 산업발전을 이끈 기업가를 예우해 기업의 재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일이라고 밝혔지만, 지역 시민단체 등은 예산 낭비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의 관문인 국도변 야산에 울산이 배출한 세계적인 기업인의 흉상을 세울 것”이라며 “울산이 기업인을 예우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을 보여주면 기업의 재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이어져 투자한 예산의 몇 배를 돌려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시 계획을 보면, 흉상은 교통량이 많은 울산~언양 간 24호 국도에서 보이도록 울주군 반연리 193-2 일원 약 4만㎡의 야산에 만들 계획이다. 석재나 금속으로 20m 높이의 기단을 쌓고, 30~40m 높이의 흉상을 만들겠다는 것. 마치 미국 사우스다코타주(州) 러시모어산에 있는 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큰바위 얼굴’ 조각상처럼 울산의 대표 관광지로 키우겠단 구상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우선 흉상을 세울 곳이 2008년 울산시가 유니스트를 유치하면서 무상으로 준 땅이어서 흉상을 건립하려면 다시 돈을 주고 사와야 할 형편이다. 시는 땅 매입비로 50억원, 흉상 2~3기 조성 비용으로 200억원 등 총 250억원을 올 추경 예산안에 편성했다. 6월 시의회에서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전문가 등으로 꾸려 흉상을 만들 인물 선정 작업부터 시작하고, 내년 8월엔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흉상을 만들 대상 기업인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등이 거론된다. 울산에서 출생·거주·활동하며 국가와 울산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이다. 흉상 조성이 거론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울산시가 사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만 들은 상태”라며 “공식적으로 협의 요청이 오거나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울산이 고향인 창업주들은 울산에 애정을 갖고 본사를 존치하거나 각종 투자를 했지만 2세, 3세들은 경영 여건을 따져 언제든 울산을 떠날 수 있다”며 “흉상 건립은 울산이 기업인을 예우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을 보여줘 이들을 붙잡으려는 고육지책”이라고 했다.

울산시민연대는 “산업도시 울산을 일군 원동력은 기업 못지않게 시민과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재벌 총수 흉상을 건립하는 건 행정이 공공성을 잃고 우상숭배하듯 일회성 이벤트를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회사원 박현진(38)씨는 “친기업 도시란 점을 알리려고 꼭 거대한 흉상을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업들이 울산으로 올 수 있도록 산업 인프라를 갖추는 데 돈을 써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반면 “한국 주력산업을 이끈 울산이 기업가 정신을 기린다는 점에서 흉상 건립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는 찬성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