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불 축제가 26년 만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

제주시는 7일 “들불 축제 존폐 여부를 논의할 숙의형 원탁회의 운영위원 14명을 위촉했고, 이 회의에 참여할 도민 200명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운영위는 빠르면 내달 이 축제 존치 또는 폐지에 대한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 운영위 권고안은 도민 200여 명이 참여하는 원탁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마련된다.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열리는 제주 지역 최대 축제인 들불 축제 참가자들이 '오름 불 놓기'를 실시하고 있다. '오름 불 놓기'는 새별오름 38만㎡를 태우는 것으로, 축제의 백미다. 오름 불 놓기 당일에만 15만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유망 축제, 최우수 축제, 문화 관광 축제 등으로 선정됐다. 또 들불 축제에서는 횃불 행진과 달집태우기 등처럼 불을 주제로 한 행사가 열린다. /제주시

제주 들불 축제는 봄이 오기 전 해충을 없애기 위해 목장이나 들판에 불을 놓았던 풍습에서 유래됐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1997년 시작했다. 축구장 42개 면적인 작은 화산체 ‘새별 오름’ 가운데 38만㎡(11만5000여 평)를 태우는 것이 축제의 백미다. 또 횃불 행진과 달집태우기 등과 같이 불을 주제로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오름 불 놓기 당일에만 15만명의 도민과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문체부 지정 유망·최우수·문화 관광 축제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초 정월대보름에 맞춰 열렸는데, 겨울 추위와 강풍으로 2013년부터 3월로 옮겨 개최됐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다. 지난해 봄에는 강원과 경북 지역 산불로 재산 피해가 크고, 이재민이 많아 들불 축제는 전면 취소됐다. 올 25회 축제 역시 강원 지역 산불이 발생해 ‘오름 불 놓기’는 취소됐다. 정부는 축제 개막전인 지난 3월 8일 산불 방지 담화문을 발표, 산불 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경계 단계에서는 ‘산림 또는 산림 인접 지역의 불 놓기’는 법으로 금지된다.

이처럼 산불 발생 우려와 기후 위기 주범으로 꼽히는 탄소 배출, 미세 먼지 발생 등 환경 문제로 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름에 기름을 뿌려 인위적으로 불태운다는 점에서 환경 훼손과 오염이 불가피하고, 일부러 불을 놓아 탄소를 배출시킨다는 점에서 더 이상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개최 시기가 산불로 고통받는 봄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건조한 날씨로 산불 주의보가 내려지고, 산불로 피해가 큰 상황에서 일부러 불을 놓는 행사가 축제의 주요 행사라는 점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 단체는 “오름을 태운다는 것은 점차 숲으로 변해야 하는 자연적 군락 변화를 가로막고, 크고 작은 생명체를 산 채로 태운다는 것”이라며 “탄소 중립을 위해 매년 나무를 심고, 한쪽에서는 오름을 태우면서 자연을 파괴하고 탄소를 배출하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존치를 주장하는 측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불을 다루는 축제라는 점과 거대한 오름을 실제 통째로 불태우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라는 점, 20여 년간 이어져 오면서 제주 대표 축제로 자리 잡은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고태민 제주도의회 의원은 “하이라이트인 불 놓기를 없앤다는 발상은 축제 산업과 관광 제주의 실익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오름과 생태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이보다 더한 실익이 있기 때문에 일정과 생태계 보전 등에 대한 문제를 보완한 축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들불 축제 ‘오름 불 놓기’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제주녹색당이 도민 749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4월 제주시에 숙의형 의제로 다뤄달라고 청구하자, 제주도 관련 심의위에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축제를 주최·주관하는 제주시는 6개월 이내 원탁회의 숙의형 의제로 상정해 정책 개발을 실시해야 한다. 이 회의는 시민을 비롯해 전문가, 활동가, 정책 결정자 등이 모여 의제별로 토론하고, 다수 참여자가 제안한 의견에 대해 전체 의견을 다시 수렴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결국, 이 축제는 존폐 여부, 축제는 유지하되 오름 불 놓기 프로그램만 폐지할 경우 대안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만 남겨둔 상태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숙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 참여 조례를 근거로 공론화가 진행되며 6개월 이내인 11월까지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며 “운영위원들이 시민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축제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