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식당 본점과 허기숙 할머니.

한국인의 애호 음식인 ‘부대찌개’는 70여 년 전 미군 부대 주변에서 시작됐다. 6·25전쟁이 끝난 뒤 인천과 부산, 대구 등 미군이 주둔한 도시에서 이 음식이 팔렸지만 그중에서도 ‘의정부 부대찌개’가 가장 유명했다. 당시 캠프 레드클라우드, 캠프 스탠리, 캠프 잭슨 등 미군 부대만 8개가 있던 경기도 의정부시에는 부대찌개 거리까지 생겼다.

‘의정부 부대찌개’ 식당 중에서 1960년 고(故) 허기숙 할머니가 문을 연 ‘오뎅식당’이 원조로 꼽힌다. 이제 오뎅식당은 아들(김태관·69)에 손자(김민우·41)까지 3대째 이어져 직영점 8곳을 둔 연매출 200억원 규모의 요식 기업으로 성장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늘 미군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사셨어요.”

3대째 운영 중인 손자 김민우씨.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220-58번지 오뎅식당 본점에서 만난 김민우 대표는 “3대가 부대찌개로 먹고살았다”며 할머니 허기숙씨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의 본점이 있는 곳은 1960년 허 할머니가 포장마차로 장사를 시작한 바로 그 자리다. 처음엔 ‘오뎅집’이라고 불렸는데 이름 그대로 어묵과 술을 파는 포장마차였다고 한다.

당시 의정부에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군속(軍屬·군무원)이 많아 포장마차 손님 대부분이 군속이었다. 퇴근길 그들은 부대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햄과 소시지, 베이컨, 통조림 등을 내밀며 “안주 좀 만들어달라”고 했다. 허 할머니가 그 재료들을 한데 볶아 술안주 메뉴로 만들었는데 국물 없이 볶기만 해 ‘부대볶음’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밥이랑 먹을 국물 없느냐”는 단골손님이 하나둘 늘었고, 허 할머니는 부대볶음에 김치·고추장 등을 넣어 찌개로 끓여 냈다. 부대찌개의 탄생이었다. 김 대표는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가 아니었으면 구경도 못 했을 식재료와 김치, 고추장 등이 만났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한식·양식 퓨전 요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 부대찌개는 ‘잡탕’에 가까웠다고 한다. 손님들이 갖다 준 식재료가 그날 그날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햄과 소시지, 김치, 두부 등이 똑같이 들어간다. 하지만 당시는 미군 부대 보급 통조림의 종류에 따라 부대찌개의 맛이 달라졌다. 어느 날은 베이컨 대신 칠면조 고기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의정부 부대찌개’처럼 미군 부대에서 연유한 비슷한 음식들이 있었다. 인천과 대구 등지에선 미군 부대 잔반을 끓여 만든 음식이 ‘꿀꿀이죽’ ‘유엔탕‘ ‘유엔수프’로 팔렸다. 1955년 3월 19일 자 조선일보에는 ‘꿀꿀이죽을 먹고 지난 15일 김모라는 사람이 즉사한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 당국에서는 오는 20일부터 시장에서 꿀꿀이죽을 파는 죽장수들을 일제히 취체(取締) 적발하리라고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지난 2014년 별세한 오뎅식당 설립자 고(故) 허기숙 할머니가 생전 손님들을 맞아 부대찌개를 조리하고 있는 모습. /오뎅식당

서울 용산 미군 부대 주변에서 팔리던 ‘존슨탕’도 부대찌개와 비슷하다. 1966년 린든 베인스 존슨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먹어보고 극찬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지금도 존슨탕이라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는데, 부대찌개와 다른 점은 김치와 라면 사리 대신 치즈를 넣는다고 한다.

포장마차 오뎅식당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 집을 지었다. 30평 규모의 단층 건물에 절반은 집으로 쓰고, 반은 테이블 5개에 연탄불을 놓고 가게로 사용했다. 손님이 많아지면서 집 부분을 헐어 테이블을 15개까지 늘렸다. 이후 인근에 연면적 150평짜리 3층 별관 건물을 올렸다.

1990년대 들면서 부대찌개를 찾는 사람은 더 늘었다. 오뎅식당 인근에 20여 개 식당이 들어섰고, 부대찌개 골목이 형성됐다. 지금도 12곳의 부대찌개 식당이 운영 중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미군 보급품 유통 단속이 심해 허 할머니는 수시로 유치장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가족들이 “유치장에 가고 벌금 내고 도대체 남는 게 뭐냐”며 장사를 그만두자고 했지만 허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장사를 이어갔다고 한다.

김 대표는 “부대찌개는 전쟁과 미군 부대 덕분에 태어난 슬픈 역사를 가진 음식이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는 자식과 손자들까지 다 키울 수 있었던 고마운 음식”이라며 “왜 입버릇처럼 ‘미군 덕분에 먹고살았어’ 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오뎅식당은 의정부 본점과 별관에서만 월평균 스팸 1만2000여 캔, 소시지는 3만7000여 개, 라면 사리는 8600여 개가 소진된다. 2009년 법인을 설립하고, 서울 잠실·은평, 부천, 인천, 김포 등에서 직영점 8곳을 운영 중이다. 정직원만 100명이 넘는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연 매출 200억원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기업 유통업체에 밀키트를 납품하기 시작했고 편의점에 직접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오뎅식당을 세 아들 중 한 명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그는 “아직 어리지만 아이들이 오뎅식당과 부대찌개를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