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국회에서 경북 경주시와 울진군에서 상경한 주민들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울진군

여야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을 양당 원내지도부에서 처리하기로 한 가운데, 경북의 원전 보유 도시인 울진과 경주 주민들이 연내에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 법은 원전을 가동하면 나오는 고준위 방폐물(사용후 핵연료)을 저장할 시설 건설과 주민 지원 방안 등을 담은 법이다. 원전에서 저장할 수 있는 사용후 핵연료 용량이 포화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지역 주민들이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경북 울진군 범군민대책위원회 오희열 사무처장은 22일 본지 통화에서 “군민들은 정부가 울진에 방폐물을 영구적으로 방치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진은 한울원전 1호기를 비롯해 신한울 3·4호기 등 원전 10기를 보유한 국내 최대 원전 소재지다. 그러나 기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가 늘면서 한울원전은 2031년에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포화 상태에 이른 원전은 가동이 중단된다.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 전경./한울원자력본부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은 2030년까지 한울원전 내에 임시로 쓸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짓기로 했다. 고준위 방폐물을 저장할 영구처분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할 시설이지만, 특별법 제정이 미뤄지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해당 시설이 사실상 영구처분장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오 처장은 “그동안 원전을 통해 전력 생산과 공급에 울진군이 크게 기여했는데 방폐물까지 영구적으로 떠안을 순 없다는게 지역 민심”이라고 했다.

월성 원전이 위치한 경주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이곳은 2037년쯤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채근 경주시 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원전범대위) 사무국장은 “영구 처분장이 지어지면 기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옮겨 원전 가동 기간을 늘릴 수 있다”면서 “관련 법이 공론화 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결국 경주와 울진 주민들은 지난 21일 국회를 방문해 여야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진구 경주시 원전범대위 위원장은 “신속히 특별법을 제정해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고 중간저장시설과 영구 처분장을 건설해야한다”며 “그전까지 임시로 쓰일 건식저장시설에 대해선 해당 지역에 지원금을 적용해달라”고 말했다.

김윤기 울진군 범대위 위원장도 “원전 부지 내에 새로운 건식저장시설을 지을 경우 지역 주민의 동의 절차를 받아달라”며 “건식저장시설을 영구 처분장으로 쓰지 않을 것을 보장해달라”고 국회에 건의했다.

한국수력원자력(주)월성원자력본부 전경./뉴스1

한편, 22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여야는 특별법 심사를 보류하고 이를 양당 원내지도부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탈원전’ 폐기와 탈원전 유지로 여야 위원들간 논의가 평행선을 달렸기 때문이다. 산자위 한 관계자는 “상임위에서 논의를 이어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여야간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원내지도부 간 협상을 통해 특별법 제정 논의가 긍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1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특별법 도입은) 원전 지속 여부와 별개로 준비해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가 내달 9일이면 종료되는만큼, 시간을 지체하면 특별법이 자동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원전소재 지방자치단체 행정협의회장인 손병복 울진군수는 “사용후핵연료는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으로 이동하기 전까진 상당 기간 원전 내에 보관해야하기에 주민 불안감 해소가 필요하다”며 “여야 간 정치적 입장을 떠나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