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600년 역사의 산증인 석송령 노거수. /예천군

보호책 넘어 멀리서 바라보던 경북 예천군의 ‘석송령’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예천군은 보호를 위해 관람을 제한해 오던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천연기념물 294호)을 한시적으로 전면 개방한다고 1일 밝혔다. 군에 따르면 개방 기간은 이달부터 오는 6월까지 3개월 간이다. 관람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단, 인원은 매회 30명으로 제한하고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군은 “그동안 보호책에 둘러싸여 그 바깥 멀리서 석송령의 외형만 바라볼 수 있었으나 이번 전면 개방으로 가까이서 이 나무의 여러 측면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세금까지 내는 600년 역사의 산증인 석송령 노거수

석송은 우산 모양의 반송으로 수령이 600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 사이엔 600여년 전 홍수가 졌을 때 마을 앞 냇가로 떠내려 온 소나무를 주민들이 건져 지금 위치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높이 10m, 직경 4.2m, 그늘 면적만 990㎡(약 300평)에 이른다. 예천군과 감천면 천향리 주민들로 구성된 석송령보존회에서 공동으로 보호·관리하고 있다.

세금 내는 소나무로 유명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자리 잡은 천연기념물 ‘석송령’. /예천군

석송령은 세금내는 나무로 유명하다. 세금을 내는 건 땅과 건물 등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석송령’이 땅주인, 건물주가 된 사연은 이랬다. 예천군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27년 당시 천향리 석평마을 주민 이수목(李秀睦)씨는 재산은 넉넉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재산을 누구에게 물려줄까?’ 고민하던 이씨는 마을 어귀에 있으면서 주민들에게 더운 날이면 그늘을, 비오는 날이면 비를 잠시 피할 자리를 내주는 고마운 소나무에게 재산을 남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내친 김에 군청으로 달려가 이름도 짓고 호적까지 올렸다.

석평마을에 있으니 석(石)씨 성을 붙이고 영혼이 있는 소나무라는 의미에서 송(松)·영(靈)을 이름자로 해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러곤 이씨는 자신의 전 재산 5087㎡ 토지를 ‘석송령’에게 물려주고 등기까지 해줬다. 그렇게 석송령은 1927년 예천군 토지대장에 등재됐다.

예천군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 때엔 나무도 법인처럼 등기를 할 수 있었다”며 “예천군 금원마을의 ‘황목근’, 충북의 ‘정이품송’ 등도 등기를 해 재산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수 등 재해에 대비한 마을재산을 마련하고 그 소유권을 나무에 둬 주민 공동소유권으로 할 경우 생길 번거러움과 분쟁을 미리 예방하기 위한 옛 사람들의 지혜”라는 해석도 있다.

지주(地主) 석송령은 ‘성실 납세자’다. 지난해 재산세토지분 16만원을 냈다. 지난 97년 동안 땅 사용료 등을 모아 주변 땅을 더 사 넣어 소유 토지 면적이 6248m²로 1200m²가량 불어났다. 지금은 건물주다. 석송령 소유의 땅에 지어진 천향보건진료소, 마을회관, 만수당 등도 석송령이 주인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사람 못지않게 부자인 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런 미담을 전해 듣고 하사금 500만원을 보내줬다고 한다. 매년 임대료로 벌어들인 돈은 세금을 내고, 그 이후 남은 돈의 경우 금융기관에 예치해 장학사업 등 마을 살림살이에 쓰인다.

김규원 석송령보존회장은 “석송령은 이름과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장학금 지원 등 공동체를 위한 도덕적 의무까지 지키는 마을의 수호신”이라며 “주민 단합의 구심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