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황제 어가길 동상. /대구 중구

지난 2017년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 7억을 들여 세운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純宗) 동상이 7년만에 철거된다.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유동 인구가 늘면서 동상이 주민 보행을 방해하고 교통 안전을 위협한다는 민원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동상 철거 후엔 도로 정비를 위해 다시 4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혈세를 낭비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구 중구는 순종 동상 철거를 위한 공공조형물 심의위원회에서 위원 만장일치로 철거를 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동상은 1909년 순종이 행차했던 대구 중구 수창동~인교동 2.1km를 중구가 ‘순종황제어가길’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상징 건축물로 세워졌다. 순종황제어가길 전체 구간에 투입된 사업비 70억 중 7억원이 동상 조성에 쓰였다. 지역의 관광 자원을 발굴해 방문객·유동인구 등을 늘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동상 조성 초기부터 지역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반발했다. 순종의 대구 행차는 당시 일제에 맞선 의병들의 항쟁 의지를 꺾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 등 일제 간부들이 기획한 것으로, 기념할만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궁중 대례복을 입은 순종의 모습 역시 당시의 제복 차림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중구는 “순종어가길과 동상은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는 다크투어(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것)로 의미가 있고, 인근 벽화에 프러시아식 제복을 입은 순종 모습도 넣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7년간 지역 주민 역시 순종 동상을 반기지 않았다. 그간 달성공원 인근엔 30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들어섰고, 새벽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유동인구와 차량 통행이 늘었다. 달성공원 정문 앞 도로 한복판을 차지한 순종 동상으로 인해 보행로와 차도가 좁아지면서 주민과 상인들은 “교통 안전을 위협하는 동상을 철거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결국 중구는 이달 초 ‘달성토성 진입로 환경정비사업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오는 26일까지 동상을 철거한 뒤, 연말까지 4억원을 투입해 도로 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중구는 2차로인 달성공원 진입로를 동상 철거 후 원래대로 왕복 4차로로 확장할 방침이다. 동상에 투입된 비용을 합치면 원상 복구비로 11억 상당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순종의 후손들은 대구 중구에 동상을 기증해달라고 요청했다. 철거 대신 동상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자는 취지다. 의친왕기념사업회 이준 회장은 입장문에서 “엄연히 우리의 역사인 조선왕실과 대한황실의 마지막 군주를 관광상품용으로 만들었다 부쉈다할 게 아니라, 이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선별해야한다”며 “창덕궁 희정당, 조선왕릉 유릉 앞 광장 등에 동상을 이전하거나, 이전할 장소가 없다면 황실 후손들이 모셔가겠다”고 말했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일방적으로 관광자원화 할 경우, 사회적·경제적 비용 낭비가 커질 수 있다”며 “특히 혈세로 조성되는 공공 조형물은 설치에 앞서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