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청장, 직원들과 생일잔치… 제주도는 ‘어나더 오피스’ 운영 - 지난 8일 서울 구로구청에서 문헌일(왼쪽 사진 맨 왼쪽) 구청장이 5월에 태어난 공무원들과 생일잔치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제주도가 2030 공무원들을 위해 만든 ‘어나더 오피스’에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 /서울 구로구·제주도

서울 동대문구청 청사에선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퇴근송’이 흘러나온다. ‘모두가 하나 되어 5, 4, 3, 2, 1,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록밴드 슈퍼키드의 ‘집에 가자’라는 노래다. 이 노래가 나오면 2030 막내 공무원들도 눈치 보지 않고 가방을 챙겨 ‘칼퇴’한다. 한 새내기 공무원이 이필형 동대문구청장과 만난 자리에서 “매일 퇴근송이 나오면 모두가 눈치 안 보고 칼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건의한 게 바로 실현됐다.

제주도는 지난 3월 스타트업처럼 ‘어나더 오피스(Another Office)’ 제도를 전국 시·도 최초로 도입했다. 도청 사무실 대신 서귀포 제주국제컨벤션센터, 한라도서관, 제주문학관 등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상은 6급 이하 공무원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MZ 공무원들이 민원 업무에서 벗어나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다”고 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MZ 공무원’ 마음 잡기에 애쓰고 있다. 공직에 실망해 조기 퇴사하는 MZ 공무원이 증가하면서 지자체장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허심탄회한 얘기가 나오기 어려운 ‘차담회’ ‘간담회’는 옛날 얘기다. ‘퇴근송을 틀어달라’는 소소한 건의 사항을 꼼꼼히 챙겨서 실천하고 ‘동기끼리 배낭여행’ ‘신인상 수여’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도 한다.

서울 구로구청에선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 생일 파티가 열린다. 문헌일 구로구청장이 직접 떡 케이크를 들고 그달 생일을 맞은 직원 50~60명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구로구 한 공무원은 “어렵기만 했던 구청장님이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문 구청장은 직원들 결혼식도 직접 챙긴다. 그는 “갈 때마다 양가 부모님 손을 꼭 잡고 ‘귀한 아들·딸을 주셔서 감사하다. 제가 잘 키우겠다’고 인사한다”고 했다.

요즘 구청장들은 MZ 공무원과 소통 방식도 섬세하게 신경 쓴다. 은평구는 다음 달부터 7~9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카카오톡 비밀 채팅방을 운영한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MZ 직원들은 만나서 얘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비밀 채팅방을 통해 익명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고 했다. 마포구도 내부 커뮤니티에 ‘소통벨’ 코너를 만들어 구청장이 MZ 직원들과 일대일로 소통하고 있다. 마포구 공무원 김희수(31)씨는 “‘소통벨’로 친해진 구청장님과 ‘망원동 카레 모임’도 만들었다”고 했다.

대구시는 인사철 떡 돌리기, 갑작스러운 회식, 휴가 쓸 때 눈치 주기, 비상 연락망 공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4대 자제(自制) 강령’이다. 대구 동구는 MBTI 심리상담실을 만들었는데 MZ 공무원들의 신청이 쏟아진다고 한다.

젊은 공무원에게 맞춰 인사 제도를 바꾼 곳도 있다. 서울 중구는 올해부터 신입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신인상’을 주기로 했다. 공무원은 임용한지 3년이 돼야 각종 포상 자격을 갖는데 자체적으로 상을 만들었다. 동대문구는 최근 구청 홈페이지에 직원 사진과 이름을 모두 없앴다. 이 구청장은 “악성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다 퇴사하는 직원이 많다고 해서 바로 조치했다”고 말했다. 대전시는 휴가 결재자를 과장급(4급)에서 팀장급(5급)으로 낮췄다. MZ 직원들이 상급자 눈치를 덜 보고 휴가를 편하게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지자체장들이 ‘MZ 붙잡기 대작전’을 펼쳐야 할 정도로 젊은 공무원의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옥재은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와 자치구의 5년 차 이하 공무원의 면직 비율은 2019년 4.7%에서 2022년 8.6%로 뛰었다. MZ 공무원 100명 중 9명이 5년 내 사표를 던진다는 얘기다. 지난 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퇴직한 공무원(재직 10년 이내) 10명 중 8명(81.7%)이 신입 공무원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직 사회는 민간 기업처럼 처우를 올려줄 수 없기 때문에 소소하지만 진정성 있는 아이디어를 짜내 젊은 공무원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젊은 공무원들이 ‘일할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