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에 오리고기를 나눠 먹고 중태에 빠진 경북 봉화 노인들에게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당초 식중독을 의심했던 경찰은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16일 경북경찰청은 전날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한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나눠 먹은 이들 중 심정지와 근육 경직 증세를 보인 60∼70대 여성 3명의 위에서 농약 성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농약 성분은 안동병원 의료진이 이들의 위세척액과 혈액 표본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 감정을 요청한 결과 확인됐다. 이들의 공통된 증상은 호흡 곤란과 침 흘림, 근육 경직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마땅한 해독제가 없어 몸에서 분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오리고기를 먹었던 다른 여성 한 명도 17일 오전 안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봉화군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범죄 정황이 드러난 만큼 경찰은 용의자 특정을 위해 경로당 회원 등 주변 탐문과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범인을 추적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농약 중독 증세는 특정 자리에서 발생했다. 사건 당일 모인 주민 대다수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 후 떠났고, 늦게 도착한 일행 5명은 맨 마지막에 식사를 했고 같은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4명만 농약 중독 증세를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당일인 지난 15일 낮 12시쯤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한 경로당 회원 41명은 초복 행사로 마을 내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나눠 먹었다. 이후 이들은 취미활동을 위해 인근 노인복지관과 경로당 등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사건 당일 오후 2시 이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오리고기를 나눠 먹었던 주민들 가운데 A(69)씨가 심정지 증세가 나타났다. 이어 B(75)씨와 C(65)씨도 의식을 잃는 등 위독한 증세를 보였다.
한편 경북에선 2015년 7월 14일 초복 다음날 상주시 한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7명 중 6명이 냉장고에 든 사이다를 나눠마셨다가 2명이 숨지고 4명이 중태에 빠진 이른바 ‘농약사이다 사건’이 발생했다. 이듬해 3월엔 청송군 현동면 한 마을회관에서 냉장고에 든 소주를 나눠 마신 주민 2명 중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두 사건에 모두 당시 제조나 판매가 중단된 고독성 농약 ‘메소밀’ 성분이 검출됐다. 메소밀은 진딧물 방제에 주로 쓰이는 살충제로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는 포항에서도 이른바 ‘농약 고등어탕 사건’이 발생했다. 2018년 4월 21일 아침 식사로 끓여 놓은 고등어탕을 미리 맛본 주민 1명이 구토 증상을 보였다. 당시 고등어탕에는 저독성 농약 150㎖가량이 들어있었다. 당시 마을 주민과 갈등이 있었던 60대가 농약을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