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전 발생한 시흥 슈퍼마켓 강도살인 사건 용의자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 수배전단. 경찰은 2017년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들어가면서 새로 제작해 배포한 이 전단을 보고 지난 2월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시흥경찰서

경찰이 경기 시흥 슈퍼마켓 살인강도 용의자를 16년 만에 검거하는 과정에서 2017년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시작하며 새로 제작해 배포한 수배전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A(49)씨는 당시 슈퍼마켓 점주를 살해하고 3만~4만원을 훔쳤다고 자백했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18일 강도살인혐의로 구속된 A씨를 검거하게 된 경위에 대한 브리핑을 갖고 “2017년 제작해 배포한 수배전단을 보고 지난 2월 담당 형사에게 ‘전단에 나오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는 내용의 제보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전담팀을 편성, 재수사를 진행해 지난 14일 검거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A씨는 지난 2008년 12월 9일 오전 4시쯤 시흥시 정왕동의 한 슈퍼마켓에 침입해 점주 B(당시 40대) 씨를 흉기로 살해한 뒤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범인은 검정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복면을 쓰고 침입했으며, 범행 장면은 매장 안 보안카메라(CCTV)에 포착됐다. 경찰은 A씨가 이보다 이틀 앞서 얼굴을 드러내고 방문한 영상을 확보해 유력한 용의자로 공개 수배했으나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장기 미제사건이 됐다.

A씨는 이번 경찰 조사에서 “담배를 구입하기 위해 슈퍼를 찾았을 당시 B씨가 깊이 잠이 들어 불러도 잘 깨지 않았고, 금고에 들어있던 만원권 지폐를 보고 절도를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이틀 뒤 새벽 시간에 흉기를 가방에 넣고 마스크, 장갑을 착용한 상태로 들어가 금고를 털다가 발각되자 B씨를 찌르고 도주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범행 직후 시흥에 있던 지인의 집에 들어 옷을 갈아입고 경남 마산의 본가로 도주했다고 진술했다. 또 훔친 돈은 3만~4만원으로 피가 묻어있어 버렸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에서 B씨는 목 등 7곳을 찔린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도주하면서 범행도구인 흉기는 대전의 고속도로에 유기하고, 옷가지는 진주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A씨는 당시 경남 지역에서 생활했으며 시흥에는 약 1~2개월 지인의 집에 묵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범행 당시 검거에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직접 증거가 없어 탐문조사를 했으나 용의자가 시흥에 잠시 거주했기 때문에 포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의 자백 이외에 범행 현장에 남긴 지문이나 DNA 등 직접 증거는 부족한 상황이어서 보강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A씨가 범행 시점을 전후로 광명, 화성 등 인근지역에서 현금 인출 등 금융거래 내역이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또 A씨 주변의 참고인 등이 당시 방범카메라에 포착된 영상 등을 근거로 A씨가 맞다고 지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영상분석 전문업체에 의뢰해 16년 전 방범카메라에 포착된 얼굴을 다른 사진도 대조했다. 범행 이전인 2006년 운전면허증 사진과는 92.919% 이상 동일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경찰은 제보 이후 검거까지 5개월이 걸린 것은 장기 미제사건이라 확인할 내용이 많았고 피의자의 행적에 대한 조사에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검거 직후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관의 설득과 프로파일러 면담 과정에서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17일 오전 6시에 경찰관 면담을 자청해 자백을 했다고 한다. 그는 범행을 자백하면서 “가족들이 살인자 가족으로 지목될까지 걱정돼 부인했다”는 말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A씨가 2008년 강도살인 범행 이후에도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정황이 있는 만큼 지난 16년간의 행적과 여죄에 대해서도 확인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