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찰이 ‘복날 농약 사건’이 발생한 경북 봉화군 내성4리 경로당에 폴리스 라인을 치고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봉화 시골에서 발생한 ‘복날 농약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 경찰이 57명 규모의 전담 수사팀까지 꾸렸지만 사건 발생 9일째인 23일까지도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초복인 지난 15일 봉화군 봉화읍 경로당 회원 41명은 마을 식당에서 오리 고기를 먹었다. 이 중 회장 A씨 등 5명이 농약을 먹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3명은 15일, 1명은 16일, 나머지 1명은 18일 고통을 호소하며 각각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누가 언제·어떻게 농약을 탔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사건 사흘 뒤 나온 피해자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16일 잇따라 입원한 경로당 회원 4명은 15일 식당 같은 테이블에서 오리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경로당으로 가 커피를 나눠 마셨다고 한다.

경찰은 당초 식당 음식을 의심했으나 이들이 커피를 마신 컵과 용기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사건 사흘 뒤인 18일 80대 회원 B씨가 갑자기 같은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것. B씨에게서도 같은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B씨는 사건 당일 다른 피해자 4명과 다른 테이블에서 오리 고기를 먹었다. 이후 함께 경로당에 들렀지만 커피를 먹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B씨는 현재 위중한 상태다. 경찰 안팎에서는 “사건이 갑자기 오리무중이 됐다”는 말이 나왔다. 경찰은 B씨의 집을 수색하고 집 주변에 설치된 방범카메라 영상 분석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뒤늦게 농약을 마셨거나 증상이 뒤늦게 발현됐을 수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독극물을 먹으면 대부분 즉시 증상이 나타나는데 피해자 중 최고령인 B씨의 증상이 가장 늦게 발현됐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반면 김권 안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독극물의 종류에 따라 시차를 두고 증상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농약은 어디에 어떻게 넣었나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누군가가 경로당 냉장고 안에 있던 커피에 농약을 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피해자 5명에게서 검출된 농약 성분은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두 가지다. 그래서 이 두 성분이 혼합된 농약을 썼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두 성분이 모두 들어간 농약은 국내에 한 종류뿐이라고 한다. 이 농약은 가루 형태로 특별한 냄새가 없고 커피와 비슷한 적갈색을 띠고 있다. 경찰은 이 농약을 파는 농약상을 대상으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원한 관계가 있었나

경로당 회장 A씨는 평소 냉커피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경로당 회원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이 커피에 농약을 탔다면 경로당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 농촌에서 발생한 농약 사건은 대부분 주민들 간 갈등이나 불화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경로당 회원들은 “서로 도와가며 가족같이 지냈다. 최근에 싸운 일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는 알 수 없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왜 아직도 못 잡고 있나

사건 현장인 경로당에 방범카메라가 없다. 경로당 주변 방범카메라는 고장 난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시골이다 보니 차량 블랙박스나 방범카메라 영상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경로당 회원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하고 있지만 단서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5명 중 2명이 최근 의식을 찾아 수사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