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발생한 경북 봉화 ‘농약 커피’ 음독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막바지로 가고 있다. 1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이달 안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경찰은 용의자도 특정한 상태이며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과정 등에 대한 막바지 보강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은 발생 한달을 넘기면서 미제가 될 우려도 제기됐으나, 경찰 관계자는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유의미한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사건이 발생한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서 평소 노인 회원들 사이에 불화와 갈등이 있었던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동안 현장 감식을 통해 감정물 400여점과 주변 방범카메라(CCTV)와 블랙박스 영상 등 86개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또 관련자 등 70여명에 대한 면담 조사에 이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DNA 검사도 진행했다.
◇봉화 경로당 ‘농약커피’ 음독 사건
이 사건은 초복인 지난달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경로당 회원 41명이 마을 음식점에 모여 점심으로 오리고기를 먹었다. 이 가운데 경로당 간부인 할머니 4명은 점심 식사 후 경로당으로 이동해 주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이들은 15~16일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오리 고기에 독극물이 섞인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나 경찰 조사에서 커피 컵에서 농약 성분이 나왔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역시 경로당 회원인 A(85) 할머니가 나흘 뒤인 지난달 18일 같은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아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사건 당일 다른 피해자 4명과 다른 테이블에서 오리 고기를 먹었고 경로당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A씨는 입원 12일 만인 지난달 30일 숨졌다. 이번 사건의 유일한 사망자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독극물을 먹으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데 5명 중 최고령인 A씨만 뒤늦게 증상이 발현된 게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경찰도 농약 음독 피해자 5명 가운데 A씨의 집만 집중 수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커피에 농약 탈 만큼 원한 있었나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8일 입원하기 전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봉화군이 시행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으며, 재래시장 상가에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화투놀이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은행에 들러 자기 통장에 들어있던 현금 일부를 인출하고, 5000여만 원 든 통장을 손자에게 전달한 뒤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던 중 쓰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초기 수사에서 경로당 회원 간의 갈등이 사건의 원인일 것으로 봤다. 경로당 회장이 평소 냉커피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회원들이 나눠 마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농약을 탔을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경로당 운영 방식을 두고 내부 갈등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씨와 경로당 회원들 간에 불화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한 자녀는 “경로당에 다녀 온 어머니가 최근 우리 가족의 잇따른 사고사(死) 등 신변에 대한 악담과 조롱을 듣고 무척 속상해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이상한 소문이 많은데 어머니는 절대 농약을 탈 분이 아니다”라며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잘못이 있다면 소송 등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