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불타고 있다. /조선일보DB

지난 6월 24일 발생해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이 2021년 처음 군에 납품을 시작할 당시부터 줄곧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해 품질검사를 통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방위사업청과 리튬전지 납품 계약을 체결한 아리셀이 규격미달 판정을 받고 납기가 촉박하자 비숙련공을 투입해 무리하게 제조공정을 진행하는 바람에 제품 불량으로 화재가 난 것으로 판단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23일 오전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수사 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경찰과 노동부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 인력 공급업체인 한신다이아 대표, 아리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 등 4명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적용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 대표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지난 6월 24일 오전 10시30분쯤 화성시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리튬전지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3명이 사망하고 중상 3명, 경상 6명 등 9명의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화재가 발생한 원인과 안전관리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해왔다. 노동부도 아리셀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집중 수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아리셀은 2021년 일차전지 군납을 시작할 당시부터 따로 품질검사용 전지를 제작해 시료와 바꿔치기하는 수법 등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국방기술품질원의 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방법으로 아리셀은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리셀은 올해도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맺고 지난 2월 말 8만3000여개를 납품했고, 4월 말에도 8만3000여개를 납품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4월분 납품을 위한 품질검사에서 처음으로 국방규격 미달 판정을 받아 다시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6월분(6만9000여개) 납기일도 다가오자 5월 10일쯤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제조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루 5000개는 아리셀 공장 일평균 생산량의 2배 수준이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한신다이아(메이셀의 전신)로부터 근로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았다. 또 숙련되지 않은 이들을 충분한 교육도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했다. 이 때문에 제품의 불량이 늘어나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불량도 늘어났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3∼4월 2.2%였던 평균 불량률은 5월 3.3%, 6월 6.5%로 상승했고 케이스 찌그러짐이나 전지 내 구멍 등 기존에 없던 유형의 불량도 추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아리셀은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케이스를 망치로 쳐 억지로 결합하거나 구멍 난 케이스를 재용접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이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화재 사고 이틀 전인 6월 22일에는 전해액 주입이 완료된 발열전지 1개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지만, 원인 분석이나 적정한 조치 없이 생산 라인을 계속 가동했다. 또 당시 폭발한 전지와 동일한 시점에 전해액이 주입됐던 전지를 아무런 조치 없이 화재사고 장소로 옮겨 보관한 이후에 이번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또 인명피해가 컸던 원인에 대해서는 대피경로 확보나 안전·소방교육에 부실이 있었다고 밝혔다. 화재가 발생한 공장 3동 2층에선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중 일부는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됐다.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보안장치가 설치되기도 했다. 또 근로자의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 때마다 진행해야 할 사고 발생시 긴급조치와 대피요령에 대한 교육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이상 제품을 발견하고도 검수 없이 정상 제품 취급하는 등 공정상 부실이 다수 발견됐다”며 “이를 통해 분리막 손상 또는 전지 내·외부 단락이 발생해 폭발 및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