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발생한 경북 봉화 ‘농약 커피’ 음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결과 발표가 예정보다 상당 기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다음달 추석 전까지 봉화 농약 음독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를 미루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이달 말 전까지 이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경찰이 현장 감식을 통해 사건 용의자까지 특정하는 등 각종 증거물이 충분한데도 수사결과 발표를 미룬 이유는 소송이나 민원 문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유의미한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며 “증거물 분석 및 보강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서 평소 일부 회원들 사이에 불화와 갈등이 있었던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동안 현장 감식을 통해 감정물 400여점과 주변 방범카메라(CCTV)와 블랙박스 영상 등 86개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또 관련자 등 70여명에 대한 면담 조사에 이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DNA 검사도 진행했다.
경찰 수사결과 발표에 신중한 이유 중 하나로 2016년 3월 초 이웃 지자체인 경북 청송군 현동면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농약 소주 사건’이 거론되고 있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두 달여 만에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60대 주민 2명이 마을회관 냉장고에 보관해둔 소주를 나눠 마신 뒤 쓰러졌고, 이 중 한 명이 숨졌다. 경찰은 누군가 소주에 농약을 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서 70대 마을 주민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 수사 결과, 평소 용의자와 주민들 사이 불화가 농약을 탄 이유였다.
하지만 경찰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수사결과 발표 이후부터였다. 당시 수사에 참가한 경찰관 10여명이 해당 사건의 피의자 가족들로부터 소송에 휘말렸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과학적 수사 결과를 기초로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피의자 가족들의 항의성 민원, 정보공개 청구, 잘못된 수사라는 이유로 많은 경찰관 개개인이 수년간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소송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청송 농약 소주 사건은 용의자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자신의 축사 옆에서 극단 선택을 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당시 2심까지 1년 6개월 간 진행된 피의자 가족들의 수사결과 불복 소송은 경찰관 10여명이 모두 승소하면서 마무리됐다.
봉화 농약커피 사건은 초복인 지난달 15일 발생했다. 이날 경로당 회원 41명은 마을 음식점에 모여 점심으로 오리고기를 먹었다. 이 가운데 경로당 간부인 할머니 4명은 점심 식사 후 경로당으로 이동해 주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후 15~16일 사이 이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식중독 증상을 의심했으나 경찰 조사에서 커피를 마신 컵에서 농약 성분이 나왔다. 이 때문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농약을 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경찰 수사 나흘 만에 반전이 시작됐다. 경로당 회원인 80대 A씨가 지난달 18일 같은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아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사건 당일 다른 피해자 4명과 다른 테이블에서 오리 고기를 먹었고 경로당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A씨는 입원 12일 만인 지난달 30일 숨졌다. 이번 사건의 유일한 사망자였다.
농사를 짓지 않는 A씨 집에선 앞서 농약에 중독된 4명의 피해자들 몸에서 나온 동일한 농약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커피색과 유사한 적갈색을 띠고 냄새가 없는 모래알(0.5~2mm) 크기의 입제 농약으로 전해졌다. 이 농약은 국내 한 제조업체에서 만든 살충제인 에토펜프록스·터부포스 성분이 함께 들어간 유일한 제품이다. 독성이 강해 농촌진흥청은 어패류 등 수생동물에 해를 가하는 어독성(魚毒性) 1급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