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경북 울진군 울진역. 올 연말 동해선 개통을 앞두고 휴일에도 뚝딱뚝딱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철도 불모지였던 울진에 처음 생기는 기차역이다.
동해선이 지나는 강원 삼척시 삼척역 앞 번개시장 상인들도 들뜬 모습이었다. 상인 김예온(47)씨는 “경상도 사람들이 오면 시장도 북적이고 지역 경제도 살아날 것”이라며 “요즘 가게마다 잔치 분위기”라고 했다. 철도 개통에 맞춰 삼척역도 새로 짓고 있다. 삼척의 국보인 ‘죽서루’를 본떠 만든다. 삼척의 보물이 되라는 뜻이다.
올 연말 전국에 동해선 등 철도 노선 11개가 한꺼번에 개통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렇게 많은 철도 노선이 한꺼번에 뚫리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경북 포항~강원 삼척을 잇는 동해선이 개통해 부산에서 강릉까지 동해안을 따라 열차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서울 청량리부터 부산 부전까지 중앙선 복선 전철이 완성된다. 여기에 최고 시속 260㎞인 신형 KTX 열차가 투입된다. 1970~1980년대 MT 명소를 오간 경기 교외선은 2004년 적자로 멈춰 선 지 20년 만에 재개통한다.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와 서울역을 잇는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A 노선이 개통해 50만 운정·일산 주민들의 서울 출퇴근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된다. 대구·구미·경산은 수도권처럼 전철로 연결된다. 지방에 처음 생기는 광역 전철망이다.
‘역대급’ 개통을 앞두고 전국 곳곳이 이미 들썩이고 있다. 포항~삼척 간 동해선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포항~영덕 구간 공사를 시작한 이후 15년 만에 전체 구간이 열린다. 부산 금정구에 사는 이현주(42)씨는 “동해안은 가고 싶어도 교통이 불편해서 못 갔는데 올겨울에는 울진에 대게 먹으러 가려고 한다”고 했다. 올 연말 최고 시속 150㎞인 ITX-마음 열차를 먼저 투입한 뒤 수요를 봐서 더 빠른 KTX-이음 열차도 운행할 계획이다. ITX-마음 기준으로 강릉에서 부산까지 3시간 50분이면 갈 수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이제 강원도에서 경북, 울산, 부산까지 1일 관광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며 “아름다운 동해안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울진군 관계자는 “포항~삼척 노선이 개통하면 서울도 울진과 철도로 연결된다”며 “정부에 서울~울진 직통 열차 운행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교외선은 이달 시운전을 거쳐 12월부터 열차가 다시 달린다. 코레일은 1970~1980년 당시 교외선의 간이역 모습을 그대로 살릴 계획이다. 열차도 복고풍으로 만든다. 교외선이 지나는 경기 고양·양주·의정부는 교외선 역과 관광지를 잇는 시티투어 버스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정차역을 과거 12개에서 6개로 줄이고 2량짜리 열차를 투입한다. 요금은 어디서 타나 2600원이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출퇴근하는 시민도 많아 적자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량리~부전 간 중앙선 복선 전철은 사실상 ‘경부선 2′ 역할을 하게 된다. 신형 KTX-이음 열차가 청량리~부전을 2시간 50분에 연결한다. 여기선 정차역 유치전이 치열하다. 부산 기장군·동래구·해운대구, 울산 북구·울주군 등 5곳이 경쟁 중이다. 울주군은 군민 10만7000여 명의 서명을 모아 국토부에 냈다. 기장군은 유치원생들이 ‘유치 소망’ 동영상도 찍었다. 국토부는 이달 중 정차역을 확정·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정차역이 늘어나면 고속철이 완행열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말 GTX-A 파주 운정~서울역 구간이 개통하면 운정신도시에서 서울역까지 걸리는 시간이 50분(경의중앙선 기준)에서 20분으로 단축된다. 고양 킨텍스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구미~동대구~경산을 연결하는 대구권 광역철도는 대구와 경북을 수도권처럼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든다. 경산 사는 주민이 40~50분이면 구미 전자회사로 출근할 수 있다. 환승 할인도 생겨 버스에서 전철로 갈아타면 전철 요금을 50% 할인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철도 개통이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수도권이 철도 덕분에 거대한 도시권이 됐듯, 지방도 철도가 도시를 집적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역세권을 중심으로 기업을 유치하고 상권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철도가 큰 도시로 주민 이탈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