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4월 배익기씨가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2008년 이후 모습을 감췄던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당시 종이가 물에 젖어 자국이 생겼고, 여백의 일부가 탄 상태였다. /배익기씨 제공

매년 한글날이 되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이목이 쏠린다. 하지만 다가오는 올해 한글날에도 세상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훈민정음 혜례본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61)씨는 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이라도 1000억원만 주면 즉각 내놓겠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배씨는 “지금으로선 국가에 보상 받을 가능성은 없으니, 지자체나 기업에서 구매할 의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내놓을 의사가 있다”며 “하지만 구매에 나선 이들도 1000억원만 제시하면 이후부터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소장한 상주본이 잘 보관되고 있느냐는 질문엔 “국가가 보관해야 하는 국보급 문화재를 개인이 보관하는 데 관리가 잘 되겠냐”고 답했다.

상주본은 지난 2008년 7월 고서적 판매상인 배씨가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며 지역방송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배씨가 주장하는 상주본 보상가 1000억원은 2011년 9월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상주본=1조원’이라는 감정가액을 평가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배씨가 이를 근거로 문화재청 감정가의 90%는 국가에 양보하고 10%인 1000억원을 주면 내놓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배씨의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상주본의 감정가액을 의뢰하자 문화재위원 등 4명이 모여 심의했다”며 “금전적 판단 자체가 값을 논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물이지만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017년 4월 배씨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아”며 국가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2019년 9월 대법원은 “훈민정음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지난 2020년 10월 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자신의 골동품 가게에서 배익기씨가 훈민정음 상주본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권광순 기자

그러나 배씨는 상주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고 현재까지 버티고 있다. 앞서 검찰과 국가유산청은 수차례 배씨 주변을 압수수색을 했으나 상주본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인 상태다. 국가유산청은 최근까지 배씨 집 벽장, 이웃에 보관 중이던 배씨의 개인금고, 텃밭과 인근 야산까지 샅샅이 훑었으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이 같은 방법으론 상주본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하자 국가유산청은 배씨에 대해 초강수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상주본이 국가 소유인 만큼 배씨가 계속 반납하지 않을 경우 사법기관과 협의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배씨는 상주본을 낱장으로 뜯어서 몰래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버티다 문화재 훼손·손괴 등 문화재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했고, 2012년 2월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그런데 같은 해 9월 대구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배씨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배씨도 이전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상주본을 내놓겠다고 했다. 2014년 5월 2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재물손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로 판단한 것이지 배씨의 상주본 소유권을 인정해준 판결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