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부를 한 게 제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7일 오후 울산 남구 신정동. 소프트웨어 교육 시설인 ‘종하이노베이션센터’ 준공식이 열렸다. 휠체어를 탄 이주용(89) KCC정보통신 회장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종하이노베이션센터는 이 회장이 330억원을 기부해 지었다. 지상 6층, 연면적 2만㎡ 규모다. 도서관, 체육관, 창업 지원 시설도 갖췄다. 울산에 처음 들어서는 대규모 소프트웨어 교육 시설이다.

7일 울산에서 열린 '종하이노베이션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이주용(오른쪽) KCC정보통신 회장과 아들 이상현 부회장. 이 회장이 330억원을 기부해 소프트웨어 등 교육 시설인 이노베이션센터를 지었다. /김동환 기자

종하이노베이션센터란 이름은 1977년 이 부지에 실내체육관을 지어 기부한 이 회장의 부친 고(故) 이종하 선생의 이름을 땄다. 47년 전 부친이 기부해 지은 실내체육관 ‘종하체육관’이 낡자 아들이 체육관을 허물고 이노베이션센터를 지은 것이다. 이날 준공식에 참석한 김두겸 울산시장은 “대(代)를 이어 울산 시민들에게 큰 선물을 주시니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종하체육관은 울산의 첫 실내체육관이었다. 울산 지역의 천석꾼이자 사업가였던 이종하 선생이 자기 땅 1만2740㎡에 당시 돈 1억3000만원을 들여 지었다. 체육관을 지으려던 울산시가 자금 조달 문제로 고민이라는 소식을 듣고 거액을 기부했다고 한다. 이 선생은 종하체육관이 완공된 이듬해인 1978년 별세했다. 1980년대 종하체육관에서는 가수 정수라, 전영록, 이선희 등의 공연도 열렸다.

1977년 이종하(맨 오른쪽) 선생이 울산 종하체육관 준공식에서 감사패를 받는 모습. 옆에 선 사람이 이주용 회장이다. /종하장학회

이주용 회장은 이종하 선생의 양자다. 친부인 강정택 전 농림부 차관이 자녀가 없던 외삼촌 이종하 선생에게 양자로 보냈다고 한다. 이 회장은 ‘한국 IT(정보통신) 산업의 문익점’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울산에서 태어나 1960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IBM에 입사했고 1967년 국내에 처음 컴퓨터를 들여왔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고려시대 학자 문익점처럼 미국에서 컴퓨터를 들여와 보급한 것이다. 1967년 국내 최초의 IT 기업인 한국전자계산소(현 KCC정보통신)를 세워 선박 설계 소프트웨어를 국산화했고, 주민등록번호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70~1980년대 울산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스포츠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실내체육관이었다면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첨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이노베이션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울산 아이들이 서울 못지않은 시설에서 교육을 받으며 기술자의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주용 회장의 아들인 이상현 KCC오토그룹 부회장은 “아버지는 우리나라 IT 산업이 반도체 등 하드웨어는 발전했지만 AI(인공지능)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분야는 미국에 뒤처진 것을 항상 안타깝게 여겼다”며 “그래서 소프트웨어 인재를 기르는 교육장을 연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2017년 KCC정보통신 창립 50주년을 맞아 “내가 가진 예금, 주식 등 1200억원 중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이노베이션센터를 준공하면서 7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 앞서 2017년 150억원을 출연해 ‘미래와 소프트 재단’을 세웠고 서울대 문화관 리모델링 기금, 서울대병원 발전기금 등을 내놨다. 지난 9월에는 52억원을 내 운당나눔재단을 설립했다. 기부한 돈이 전부 600억원이 넘는다. 그는 “이제 속이 편하다.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대를 이은 기부’를 기리는 정·재계 인사와 울산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김상욱 국회의원, 이채익 전 국회의원, 오연천 울산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김 시장은 이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당신은 울산의 자랑스러운 시민”이라고 했다. 센터 근처에 사는 주민 이춘자(70)씨는 “우리 아들이 체육관에서 탁구를 배웠는데 이제는 손주가 여기서 컴퓨터를 배우게 생겼다”고 했다.

3대인 이상현 부회장은 “아버지는 항상 ‘돈을 벌기는 쉽지만 잘 쓰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아끼고 또 아꼈다”며 “왜 그렇게 자린고비처럼 사셨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저도 기부 DNA를 물려받았지요. 이제는 제가 또 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