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증류주 하면 1400년대에 탄생한 스코틀랜드 스카치 위스키가 제일 유명하지만 안동소주의 역사가 더 깊어요. 200년이나 먼저예요. 우리 전통 증류주인 안동소주를 세계화해 ‘K위스키’ 열풍을 일으킬 겁니다.”

독일 애주가들 안동소주 시음 - 지난 3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주류 박람회 '프로바인 2024'의 현장 모습. 안동소주 홍보관에서 주류 애호가 등이 안동소주를 시음해 보고 있다. /경북도

이철우 경북도지사 말이다. 증류주는 발효시킨 술을 끓여서 만든 술이다. 위스키와 보드카, 럼 등이 증류주다.

경북도가 안동 특산품인 안동소주 세계화를 본격 추진한다. 8일 국내외 주류 전문가들을 초청해 ‘안동 국제 증류주 포럼’도 연다. 세계적인 증류주 트렌드(유행)를 파악하고 안동소주의 세계화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안동소주를 가운데 놓고 국제 행사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독일의 주류 전문가 위르겐 다이벨 다이벨컨설턴트 대표가 ‘올해 세계 증류주 시장의 트렌드’를 주제로 강연한다. 경북도는 이번 포럼에서 세계 시장에 내놓을 안동소주의 새로운 병 디자인과 브랜드를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안동에는 9개 업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안동소주를 만들어 팔고 있는데 이를 통일해 하나의 브랜드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안동소주 병 디자인은 갓 쓴 선비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시안(試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소주는 750여 년 전인 1200년대 후반 고려 충렬왕 때 탄생했다. 일본 원정을 위해 안동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군이 증류주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이후 안동소주는 집집마다 담가 먹는 ‘가양주(家釀酒)’로 전수됐다. 처음 상품화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나온 ‘제비원소주’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전통주 발굴에 나서면서 안동소주 만드는 비법이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래픽=양진경

현재는 민속주안동소주, 명인안동소주, 일품안동소주, 명품안동소주, 회곡안동소주 등 9개 업체가 안동소주를 만든다. 만드는 방식이나 맛, 병 모양 등이 제각각인 데다 규모가 영세해 세계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경북도는 작년 2월 안동소주 업체 6곳과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로 견학을 떠났다. 스코틀랜드는 업체들이 협회를 만들어 스카치 위스키만의 전통과 품질을 지키고 양조장을 관광 명소로 운영 중이었다.

업체 관계자는 “당시 충격이 컸다”며 “그때부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바짝 들었다”고 했다.

두 달 뒤 안동소주 업체 9곳이 의기투합해 ‘안동소주협회’를 세웠다. 경북도는 안동시와 ‘안동소주 세계화 추진단’을 만들었다.

작년 12월 경북도는 스코틀랜드 위스키처럼 안동소주 품질 기준을 만들었다. 안동에서 생산된 쌀 등 곡류를 100% 사용하고 안동 소재 양조장에서 생산된 증류식 소주에만 새 ‘안동소주’ 브랜드와 병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증류 원액과 정제수 외에 첨가물을 넣으면 안 되고 알코올 도수는 30% 이상이 돼야 한다. 6개월 이상 숙성해야 한다는 기준도 담았다. 수출을 고려해 위스키처럼 오크통(참나무통)에 담아 숙성해도 안동소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미국, 호주, 중국 등으로 수출 길도 뚫었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주류 박람회인 독일 프로바인 박람회에 안동소주 홍보관도 열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이 박람회에 전통주 홍보관을 연 것은 처음이다. 오크통에서 숙성한 45도짜리 안동소주 등 신제품도 출시했다.

덕분에 2021년 2억원에 그쳤던 안동소주 수출액은 지난해 8억1700만원으로 2년 만에 4배가 됐다. 미국에 1억3000만원어치를 수출했고 이어 호주(7000만원), 중국(2000만원) 등에 많이 수출했다.

올해는 10월까지 수출액이 8억1000만원에 달한다. 2026년 목표는 40억원이다. 박찬국 경북도 농식품유통과장은 “외국인들이 안동소주는 맛이 깔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과일 향이 나서 특별하다고 한다”며 “세계적인 ‘K푸드’ 바람을 활용해 고급 한식 레스토랑과 바 등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내 시장 매출도 2022년 140억원에서 지난해 190억원으로 1년 새 약 35% 늘어났다. 경북도 관계자는 “2030 세대 고객을 겨냥해 안동소주에 레몬이나 자몽을 탄 칵테일주를 개발하고 아이돌그룹이나 유명 유튜버 등을 홍보대사로 위촉할 계획”이라고 했다. 양조장에서 1박하며 안동소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