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 공공기관이 이전해 전국 혁신도시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의 상가 공실률은 70%에 달한다. 나주 혁신도시 내 텅 빈 상가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내걸려 있는 모습. /전남일보

지난 8일 오후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나주 혁신도시). 유동 인구가 많아 핵심 상권으로 꼽히는 상야 1길에서 5년 전 문을 연 한 족발 전문점은 만석이었다. 퇴근 직장인 10여 명이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 다른 식당들도 대부분 북적거리며 활기가 넘쳤다. 반면 상야 1길에서 걸어서 10여 분 떨어진 한 극장 맞은편 여러 건물 주변은 인적이 드물었다. 상가는 텅텅 비어 있었다. 현재 나주 혁신도시의 상가는 10개 중 3개만 가동 중이다. 나머지 상가 70%는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모(45)씨는 2016년 9월 나주 혁신도시에서 82㎡(25평) 크기의 상가 2곳을 분양받았다. 6년이 넘도록 핵심 상권에서 벗어난 상가 1곳은 여전히 빈 상태로 있다. 김씨는 “혁신도시의 장밋빛 미래를 믿고 10억원을 투자했다 낭패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와 나주시가 나주 혁신도시의 높은 상가 공실률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이전 공공기관이 16개로 가장 많고, 인구도 3만9200여 명으로 최대이다. 그런데도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아 빈 상태로 있는 상가 비율을 나타내는 ‘상가 공실률(空室率)’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나주시는 빈 상가를 용도 변경을 통해 다른 시설로 바꾸는 것을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10일 전남도와 나주시 등에 따르면, 현재 나주 혁신도시에 등록된 전체 상가 5934개 가운데 4153개가 비어 있어 공실률은 70%에 달한다. 혁신도시를 관리하는 나주시 미래전략과 관계자는 “수요 예측에 실패해 애초 거주 인구보다 상가 시설이 과잉 공급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나주 혁신도시는 개발 면적의 6.8%가 상업 용지로 공급됐다. 전국의 다른 혁신도시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감정원이 혁신도시 인구 1인당 상가 면적을 분석했더니 나주는 적정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도시 인구 1인당 상가 면적이 나주는 28.1㎡로, 경북 김천 8.2㎡, 대구 9.1㎡, 강원 원주 8.9㎡ 등 다른 혁신도시보다 넓었다. 1인당 상가 면적이 다른 지역에 비해 3배가 넘는 것으로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전경. 지난 6월 드론으로 내려다본 모습. /나주시

혁신도시 인구도 예상보다 더디게 늘고 있다. 전남도는 당초 2020년 나주 혁신도시 인구가 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올해 9월 기준으로 인구는 3만9200여 명이다. 문화·편의 시설 부족 등으로 수도권에 거주하던 공공기관 이전 직원(7802명) 중 기혼자의 43%가 홀로 이주를 선택한 것 등이 예상치보다 인구가 줄어든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광주와 차량으로 30~4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나주 혁신도시 특성상 다른 지역 혁신도시처럼 대도시의 인구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지 않아 상권 활성화가 잘 되지 않은 것도 상가 공실률이 높아진 이유다. 대구와 부산 등의 혁신도시는 대도시와 가깝게 붙어 있어 유동 인구 확보가 원활하지만, 나주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또 코로나 사태로 소비가 얼어붙은 것도 상가 공실률이 높아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전남도 혁신도시지원단 관계자는 “전남도와 광주시 두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세운 공동 혁신도시라 인구 유입이 원활할 것으로 예상해 상가 면적을 과도하게 책정한 것은 실책이었다”며 “앞으로 10~20년이 흘러 인구가 늘고 도시가 안착되면 공실률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가족 단위 인구를 확보해야 혁신도시의 전체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공실률 문제는 장기 과제로 삼겠다”며 “우선 교육 여건과 문화·편의 시설 등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나주시는 상가 공실률을 줄이기 위해 상가를 생활용 숙박시설 등으로 바꾸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혁신도시는 노무현 정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계기로 조성한 도시다. 나주를 포함해 전국에 10개의 혁신도시를 조성했다. 나주 금천·산포면 736만㎡에 세운 나주 혁신도시는 2015년 12월 기반 시설 공사를 마무리했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16개 공공기관은 2019년 1월 이전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