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안좌도 주민 박주현(45)씨 가족은 지난 10월 26일 3분기 ‘햇빛 연금’ 225만원을 받았다. 신안군은 물론 가까운 목포 일부 지역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신안 지역 화폐다. 박씨 가족은 미취학 자녀 셋과 아내(30), 어머니(71)를 포함해 모두 6명. 1인당 29만~46만원을 받았다. 박씨는 “올해 양파 밭이 1000평 정도 늘어나 햇빛 연금 100만원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며 “남은 돈은 아이들 간식과 생필품 사는 데 요긴하게 썼다”고 했다.

박씨 가족은 2020년 가입비 1만원씩을 내고 안좌면 신재생에너지 조합에 가입했다. 가족 6명은 2021년 4월부터 분기마다 200만원가량, 연간 900만원의 햇빛 연금을 받는다. 주민 주도로 설립된 ‘안좌면 신재생에너지 주민·군(郡) 협동조합’은 섬에서 운용 중인 태양광발전회사 수익의 30%를 조합원들에게 나눠 준다. 배당 근거는 군 조례로 정해 놨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 자라도 태양광발전소 전경./신안군

1025개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이 지역의 한계를 주민들의 돈벌이로 발전시켰다. 말 그대로 혁신 사례다. 햇빛으로 ‘햇빛 연금’을 성공시키더니 이번엔 바람으로 ‘바람 연금’을 준비 중이다. 볕 좋고, 바람 좋은 신안군의 자연환경을 활용해 신재생에너지를 만들고, 그 이익을 주민들과 나누는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다.

7일 신안군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는 2018년 10월 제정됐다. 이를 근거로 안좌면(안좌도·자라도), 지도읍(지도·사옥도), 임자면(임자도) 다섯 섬에 600M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갖췄다. 이후 2021년 4월부터 분기마다 1인당 10만~68만원을 지급한다. 군(郡) 전체 주민 3만8126명의 28%(1만755명)가 대상이다. 2025년 비금면(비금도)과 증도면(증도), 신의면(신의도)에 태양광발전소가 추가로 설치되면 발전량은 원자력발전소 1기 규모인 1.1GW로 늘고, 연금 대상자는 45%로 확대된다. 신안군 관계자는 “현재 전체 14개 읍·면 중 3개 읍면에만 지급되는 햇빛 연금은 지난달 26일 기준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했다.

햇빛 연금의 구조는 이렇다. 주민 협동조합이 신안군의 주선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그 돈으로 총사업비의 4% 정도를 발전회사(SPC)의 채권으로 인수한다. 발전회사는 신용과 담보를 제공하고, 대출금도 갚는다. 주민들은 조합 가입비 1만원 말고는 아무런 부담이 없다. 그런데도 수익의 30%를 나눠 받는 것은 발전회사가 주민 동의와 인·허가 등 복잡한 행정 절차가 간소화돼 사업을 쉽고 빠르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중동에 원유가 있다면 우리에겐 햇빛과 바람, 갯벌, 바다가 있다”며 “천연자원으로 돈을 번 재생에너지 발전회사의 이익을 주민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햇빛 연금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한몫하고 있다. 전체 주민 3033명 중 2784명(91.8%)이 조합원인 안좌면. 지난 3분기에게만 배당금 5억7100만원이 한꺼번에 풀렸다. 저축이 불가능한 지역 화폐라서 곧바로 소비로 이어진다. 안좌도 금산마을의 이금배(78)씨는 “3분기 연금 17만원으로 동네 노인들과 삼겹살도 구워 먹고 막걸리도 마셨다. 시골에선 큰돈”이라고 했다. 존포마을 최미순(63)씨는 “연금 타는 날이면 섬 전체가 잔치 분위기로 들썩인다”며 “이번엔 미용실에서 파마도 했다”고 했다.

전남 신안금 임자면에서 주민협동조합이 주민들에게 햇빛연금을 나눠주고 있다./신안군

신안군은 주민 수익의 일부로 ‘햇빛아동수당’도 만들었다. 햇빛 연금 혜택을 못 보는 11개 읍·면의 18세 미만 아이들이 대상이다. 올해 8억원으로 1인당 연간 4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했다.

신안군은 ‘바람 연금’도 준비하고 있다. 2030년까지 신안 앞바다에 원전 8기 규모의 8.2GW 해상 풍력발전 단지를 만들어 전 군민에게 1인당 월 50만원, 연간 600만원을 주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이 밖에 신안군에는 1개 섬에 1개의 박물관을 만드는 ‘1도 1뮤지엄’과 군(郡)이 버스회사를 직영하는 ‘버스완전공영제’, 광물인 천일염을 식품으로 만든 ‘천일염 식품화’, 섬마다 색깔을 입힌 ‘천사(1004) 섬 컬러 마케팅’, 여객선사를 인수해 여객선을 운영하는 ‘신안군 여객선 공영제’, 청년 어업인에게 배를 빌려주는 ‘어선 구입 임대 사업’ 등 혁신 사업들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