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안다즈 서울 강남’ 레스토랑에서 로봇 셰프가 스테이크를 뒤집고 있는 모습. 이곳 장정혜 셰프는 “로봇이 11년 차 셰프인 나만큼 스테이크를 잘 굽는다”고 했다. 이 로봇은 총주방장인 다미앙 셀므가 요리한 스테이크를 학습했다./고운호 기자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5성급 호텔 ‘안다즈 서울 강남’의 2층 레스토랑. 소 부채살 두 덩이를 뜨거운 그릴에 10분쯤 굽던 셰프가 고기에 빨간색·파란색 레이저를 발사했다. 잠시 후 모니터에 마이야르 반응(고기가 익을 때 갈색으로 변하면서 특별한 풍미가 생기는 화학 반응) 92.6점, 육즙 보존율 88% 등 6가지 맛 점수가 나타났다. 이 점수는 손님들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테이크가 가장 맛있게 익은 것을 확인한 셰프는 고기를 접시에 내려놨다. 이 셰프는 로봇이다.

로봇이 일상에 부쩍 다가왔다. 서울 강남구 일대는 로봇 산업의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 공간)’라고 불릴 정도다. 강남역, 코엑스 등 서울 도심 곳곳에는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로봇, 한식·양식·치킨 등을 직접 요리하는 셰프 로봇을 둔 식당들이 영업 중이다.

강남구는 지난달 17~19일 ‘로봇 친화 도시’를 내걸고 사흘 동안 로봇 축제를 열었다. 구청이 운영하는 ‘강남미래교육센터’에는 지난달부터 로봇 도슨트에게 내부 안내를 맡겼다. 서울시와 GS칼텍스는 최근 서초구 한 주유소 안에 하루에 물품 3600개를 처리하는 로봇 물류 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6일 오후 찾은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는 배달의민족, LG전자 등이 만든 로봇 배달부 14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로 음식 배달을 하는데, 실내는 물론 가까운 다른 빌딩으로도 배달을 갔다. 사람이 빠르게 걷는 속도와 비슷한 시속 7km 정도로 다닌다. 실내에선 혼자 엘리베이터도 타고, 자동문도 열고 닫고 한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로봇만의 신호를 보내 엘리베이터와 자동문을 작동하고,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으면 센서가 작동해 피해서 간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배달 로봇 ‘딜리’. 가로 55㎝, 세로 71㎝, 높이 78㎝ 직육면체 형태에 바퀴 6개가 달렸다. 로봇 상단의 뚜껑을 열면 2ℓ 생수를 6개까지 넣을 수 있다. 로봇에는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라이다’(LiDAR)가 달려 있어 행인과 자동차를 피해 이동하고, 빨간불이 켜진 건널목에선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딜리는 코엑스 인근 6개 건물에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뉴시스

실외 배달 전문 로봇도 있었다. 실내 로봇이 서쪽 출입구까지 음식을 가져가면 넘겨받아 인근 빌딩으로 이동했다. 횡단보도 앞에선 빨간색 신호등에 멈추고, 파란색이 켜지면 움직였다. 배달 장소에 도착하자 로봇은 주문자에게 전화를 걸어 “배달이 완료됐으니 지금 나오셔서 음식을 수령하세요”라고 말했다. 주문자가 나와 배달의민족 앱에 뜬 ‘문열기’ 버튼을 누르니 위 뚜껑이 열렸고, 그 속에 음식이 있었다.

서울에서도 특히 강남구 일대에 로봇이 많이 등장한 이유에 대해 IT 업계와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돼 있고, 시장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경기도 내 로봇 기업의 99.8%가 강남과 가까운 경기 남부권에 있다.

한재권 한양대 ERICA 로봇공학과 교수는 “테헤란로는 로봇 스타트업 기업들이 모여 있고, 로봇에 대한 실험 데이터들을 쌓아가는 중이다”라며 “강남은 단위 면적당 인구 밀도가 높고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쉬워 로봇 산업 발전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3년째 강남역 인근에서 한식 로봇 스타트업 ‘봇밥’을 운영하고 있는 김용(35) 대표는 “투자 유치부터 인력 채용 등을 생각하면 월세가 비싸더라도 강남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며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 손님의 집 앞에 음식을 배달하는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강남에는 공학 지식이 없어도 로봇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로봇 업체와 창업자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도 유행하고 있다”고 했다.

강남구 수서·세곡 일대에는 ‘로봇 거점 지구’가 조성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한국전자기술연구원과 한국산업기술시험원 등이 산업 현장에서 쓰일 로봇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런 연구원들을 위해 강남구는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연구동 3곳을 짓고 있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이미 로봇 산업은 강남으로 모여들고 있다”며 “특화된 로봇 사업을 추진해 강남이 한국의 로봇 사업을 견인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