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오후 대구 계성고 행정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직원이 수화기를 들자 70~80대로 추정되는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교장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했다. 박현동 교장에게 전화가 연결되자 남성은 “6·25 때 피란 와서 계성학교(계성고 전신)를 다녔던 학생”이라며 “제가 잘못 받았던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가난했던 고학생이 64년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고교 시절 담임 교사의 착각으로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이 졸업 64년 만에 모교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돌려줬다. 대구교육청은 30일 익명을 요구한 A씨가 계성고등학교에 3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A씨는 1953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다 대구로 피란했다. 학업을 잇기 위해 여러 학교의 문을 두드렸으나 혼란한 전시(戰時)의 학적 문제로 선뜻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낙담한 A씨를 받아준 곳이 계성학교였다.

우여곡절 끝에 재입학한 A씨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둘 처지에 놓였다. 이때 담임교사가 손을 내밀었다. “마침 네게 줄 수 있는 장학금이 생겼다”고 했다. 한 선교사가 “목사의 자녀에게 전달해 달라”며 학교에 맡긴 기부금이었다. 제자들의 학적 자료를 살펴보던 담임교사는 A씨 부친의 직업란에 적힌 ‘군속(軍屬·군무원)’ 두 글자를 ‘군목(軍牧·군종목사)’으로 착각하고 A씨를 장학금 수혜자로 올렸다.

졸지에 목사의 아들이 된 A씨는 두 차례에 걸쳐 장학금을 받았다. A씨는 처음엔 얼떨결에 받았지만 두 번째 수령 때 잘못 지급된 사실을 알고 나서도 있는 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차례 장학금을 받고 1956년 고교를 졸업한 A씨는 서울대를 나와 자수성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은 마음의 짐은 64년간 A씨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A씨는 지난달 17일 박 교장에게 “학업을 마치고 싶은 욕심에 착오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장학금을 받았다”며 “받았던 장학금을 코로나 때문에 학업이 더 어려워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A씨는 당시 받았던 장학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300만원을 모교 계좌로 부쳤다. A씨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본지 연락에 대해 문자로 “조용히 진행하려는 나의 마음이 아니라서 사양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박 교장은 1일 “어려운 시절의 도움을 잊지 않고 보내주신 기부금이기에 더욱 감사하다”면서 “돌아온 장학금을 뜻 깊게 쓰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