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 앱에서 색다른 만남을 기대하던 한 남성에게 미모의 여성이 대화를 신청한다. 몇 차례 대화를 주고받던 여성이 남성에게 음란한 제의를 건넨다. 의심할 새도 없이 상대 여성은 화면 속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다. 남성도 자신의 신체를 노출하며 대화에 응한다. 화면이 끊기거나, 음질이 좋지 않은 것을 빌미로 화면 속 여성이 새로운 채팅 앱을 설치하라고 보낸다.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남성은 의심 없이 덥석 앱을 설치한다. 순간 남성의 스마트폰 속 개인 정보가 상대에게 넘어간다. 불과 1시간 전 상냥한 말투의 ‘그녀’는 순식간에 ‘그’로 변한다.

몸캥피싱 그림/일러스트= 안병현

여성으로 가장해 남성에 접근한 뒤, 은밀한 대화를 하자며 알몸 채팅을 권유해 이를 빌미로 협박하고 돈을 뜯어낸 일명 ‘몸캠 피싱’ 조직 8명이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성관계를 해주겠다며 ‘조건 만남’을 가장한 사기 행각도 벌였다. 범행 대상은 남성뿐만 아니었다. 여성들에겐 대학교수 또는 유명 병원장 자제인 것처럼 접근한 뒤, 고액 투자를 권유해 돈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도 벌였다. 성(性)을 미끼로 비대면 디지털 3종 사기를 친 이들은 1년 간 피해자 75명에게 7억원을 가로챘다.

◇짜집기 한 음란영상으로 눈속임

경찰에 따르면 이들 일당은 모두 남성이다. 하지만 이들은 “알몸 채팅을 하자”며 여성이 나오는 음란한 영상을 보냈다. 어떻게 피해자를 속였을까. 조사 결과 이들은 인터넷 등에서 떠도는 영상을 짜깁기해 마치 여성인 것처럼 행동했다. 피해자가 의심을 할까 봐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게 할 때도 있었다. “아기가 자고 있으니 말은 하지 말자”는 식으로 속이기도 했다. 소리가 나지 않거나, 영상이 끊기자 피해자들은 애가 탔지만 눈앞에 보이는 영상에 현혹돼 자신의 신체를 노출하면서 상대와 영상 통화를 이어갔다. 여성으로 알고 있던 상대는 화면을 녹화하고 있었다.

여성으로 가장해 남성을 상대로 몸캠피싱 범행을 하고 있는 모습. 새 채팅 앱을 깔고 채팅하자며 친근하게 접근(왼쪽 채팅창)하던 '그녀'는 악성코드가 설치된 앱이 피해자 휴대전화에 설치되자 마자 '그'로 본색을 드러낸다. /경남경찰청

이를 모르는 피해자들에게 이들 조직은 ‘회심의 한 방’을 보냈다. 새 영상 통화 앱을 보내는 것이다. 이미 의심을 거둔 피해자들은 상대가 보내 준 앱을 설치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악성 코드가 설치됐고 그대로 개인 정보를 빼돌렸다. 태도가 180도 변한 상대는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확보한 연락처로 주변인들에게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합의금을 주면 영상을 지워준다”는 말에 피해자들은 순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 조직은 “바로바로 답장해” “5분 내로 뛰어가”라며 상대를 정신없게 몰아쳤다.

여성으로 가장해 남성을 상대로 몸캠피싱 범행을 하고 있는 모습. 피해자 신체가 노출된 영상을 유포할 것처럼 협박하며 돈을 갈취하고 있다. /경남경찰청

요구한 돈을 보내더라도 이들은 순순히 피해자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 피해자의 경우 4개월 간 12차례에 걸쳐 3700만원을 보낸 뒤에야 협박으로부터 벗어났다. 한 대학생은 협박에 시달려 대출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보내더라도 피해자들이 찍힌 영상 90%는 지인 등에 유포됐다. 이들 조직은 남성 28명으로부터 모두 3억원을 갈취했다.

◇“돈 주면 성관계”...가입 유도한 사이트도 가짜

이들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성인 척하던 이들은 “돈을 주면 성관계를 해주겠다”며 또 다른 피해자들을 물색했다. 채팅 창 속 빼어난 외모에 혹한 피해자가 이에 응하자, 이들은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사이트 링크를 보냈다. “이곳에 가입해야 자신이 성매매하러 갈 수 있다”는 말로 상대를 속였다. 안전한 만남을 위한 성매매 대금을 먼저 보내달라는 취지였다.

이에 속은 피해자가 돈을 보내지만, 실제로 기다리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이트 자체가 조건 만남 사기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였기 때문이다. 이를 모르는 피해자들은 ‘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렸다. 뒤늦게 이상한 낌새를 느껴 환불에 나선 피해자에겐 추가 입금을 요구하면 해결해 주겠다고 속였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39명으로부터 3억원을 편취했다.

◇연인 감정 만들고 고수익 투자 사기도

여성도 표적이었다. 소셜미디어 등에 떠도는 외모가 뛰어난 인물 사진을 도용한 이들은 유명 병원장이나, 대학교수 등 고위층의 유력 자제인 것처럼 속여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남성과는 달리 여성들에겐 감성적 접근이 필요했다. 호감을 얻기 위해선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이른바 ‘로맨스 스캠’이라고 불리는 신종 사기였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호감을 쌓은 후 연애나 결혼을 빙자해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범죄다. 경찰 관계자는 “몸캠 피싱이나 조건 만남 사기 등 남성 대상 범행과는 달리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 스캠은 일주일에서 2주일 정도 피해자를 상대로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마치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일을 돕고 있는 것처럼 상대를 속여 로맨스 스캠 사기를 벌이는 일당과 피해자의 대화 모습. /경남경찰청

오랜 기간 지속적인 대화로 호감을 산 이들에게 피해자들은 연인 또는 친구의 감정을 느꼈다. 그런 상대에게 일당은 “고액의 수익금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투자를 권유했다. 보통 환전하는 데 필요한 돈을 주면 고액의 수익금을 받을 수 있다고 속이는 식이었다. 일당은 피해자 8명으로부터 총 1억원을 가로챘다.

◇경찰 “온라인 공간 모르는 사람 접근 시 의심하라”

경찰은 지난해 7월 피해 신고를 접수한 후 추적에 들어갔다. 한 달 뒤, 이 같은 사기를 치고 피해금을 출금하던 조직의 인출책을 검거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이 인출책을 시작으로 수거책과 중간책 등을 차례로 검거했다. 올해 4월 중국인 국내 총괄까지 모두 8명을 붙잡았다.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이들을 모두 구속하고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로맨스 스캠 주의를 당부하는 경찰의 포스터. /경기남부경찰청

경찰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한 몸캠 피싱은 지난 2015년 102건에서 2019년 1824건으로 4년 만에 17.8배로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로 외출이 줄고, 스마트 기기를 통한 비대면 만남이나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대화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했지만, 주위의 시선 등을 의식해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모르는 사람이 온라인 공간에서 대화를 걸어올 경우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낯선 사람이 보내온 파일이나 인터넷 주소는 절대 열지 말아야 한다”며 “개인 정보나 금품을 요구할 때는 범죄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