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일대 30만㎡(약 9만평) 산에서는 지난 13일 대규모 벌목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일대 산에는 40년 이상 된 잣나무, 소나무 등이 심어져 있었다. /고운호 기자

13일 오전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의 한 산지. 민가로부터 불과 20~30m 떨어진 산 경사지에서 ‘퉁, 퉁, 퉁’ 소리가 울려퍼졌다. 4~5m 길이로 절단된 지름 30~40㎝ 크기 잣나무 줄기들이 서로 뒤엉켜 경사지에서 굴러떨어졌다. 산을 올려다보니 45도 이상 가파른 경사면 전체가 마치 삭발한 듯 모든 나무가 베어져 나갔다. 30만㎡(약 9만평) 산에 심은 나무 전체를 베는 개벌(皆伐·모두 베기) 현장이다.

가파른 산 경사면에 비스듬히 선 포클레인 3대가 통나무를 하나씩 산 아래로 집어던졌다. 육중한 궤도 바퀴가 개벌지를 헤집는 바람에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임도(林道)였는지 구분이 안 됐다. 길 하나 건너 야적장에 쌓인 나무 가운데는 지름 10~20㎝로 10~20년생 정도 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함께 현장을 찾은 박성율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는 “나이 든 나무, 어린나무 할 것 없이 산 전체를 밀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홍천군은 작년 이 일대 산지 소유주가 신청한 벌채 허가를 내줬다. 40년 된 잣나무·소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잎갈나무(낙엽송) 묘목을 심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지역 관계자는 “어린나무를 심는 것은 앞으로 1~2년 동안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우거졌던 숲이 당분간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지 취재 결과, 이 같은 산림 벌채는 홍천군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16일 지리산국립공원에서 300m가량 떨어진 전북 남원시 인월면 약 5만평 되는 산자락에서도 나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충북 제천시, 전남 구례군, 전북 무주군 등 곳곳에서 산림이 통째 사라지고 있다. 산림청은 올 1월 “벌기령(벌채 가능한 나무의 연령)을 대폭 단축해서 (벌채한 뒤) 신규 조림지를 많이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정부 목표에 맞춰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어린나무 30억 그루를 심어 향후 30년간 3400만t의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침엽수는 수령 30년, 활엽수는 20년이 탄소를 최대로 흡수하는데, 이보다 더 나이가 든 나무는 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베어내고, 그 자리에 매년 평균 1억 그루씩 어린나무를 심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산림청 계획대로라면 연평균 500만㎥이던 벌채량이 800만㎥로 60% 정도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산림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황당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일대 산에 대규모 벌목이 이뤄진 모습. 지난 13일 드론으로 촬영했다. /고운호 기자

우리나라는 1970~80년대에 전국에 걸쳐 집중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세계적으로 ‘산림 녹화에 성공한 국가'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 가운데 숲이 더 잘 자라도록 솎아베기 같은 숲 가꾸기 사업도 벌여 베어낸 나무를 목재 산업 등 다양한 용도로 써왔다. 그런데 산림청이 ‘탄소 저감’을 앞세우면서 앞으로는 벌목이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제출받은 산림청 계획에 따르면, 향후 30년간 우리나라 전체 경제림(234만㏊)의 38%가량에 해당하는 총 90만㏊에서 벌목이 이뤄질 것으로 추산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원래 10그루를 심으면 수십 년 뒤에 1~2그루가 살아남는다”며 “30억 그루를 심기 위한 벌채 규모는 3억 그루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선 지자체와 산림 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산대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는 “현장을 가보면 거의 싹쓸이식 벌목”이라며 “100억 그루 이상도 잘릴 수 있다”고 했다.

산림청 주장대로 베어내는 나무가 3억 그루라고 해도 작은 규모가 아니다. 정부가 지난 5년간 전국에 태양광을 설치하겠다며 뽑은 나무가 약 300만 그루다. 탄소중립을 위해 30년간 3억 그루를 벌목하면, 5년간 5000만 그루에 해당한다. 태양광 벌목의 16배가량 수준이다. 산림청은 지난 1월 30억 그루 식재 계획을 발표한 뒤 논란이 끊이지 않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9월에 구체적인 전략을 확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계획 자체를 철회하진 않았다.

충북 제천시 신동 부근 여러 산들이 나무가 대거 베어져 민둥산으로 변했다. 산림청은 올 1월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는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는 대신 어린나무를 심어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제공

산림청 관계자는 “기존에도 나무를 길러 벌채해 활용하고 어린나무를 심는 사업이 있었다”며 “탄소중립 차원에서 이를 확대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이미라 산림청 산림산업정책국장은 “숲의 생태적·사회적 가치를 지키면서 경제림 위주로 산림 자원의 활용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산림청은 2050년에는 수령 50년 초과 숲이 72%에 달할 정도로 노령화가 진행 중이고, 산림 관리를 통해 일자리 창출까지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탄소 저감이라는 목적을 위해 산림을 베어내겠다는 것은 유례가 없다”며 반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2일 성명에서 “경제림의 40% 가까운 90만ha에서 자라는 나무를 모두 베어내겠다는 것은 탄소중립을 빙자한 벌목 정책”이라고 했다. 또 “산림청이 제시한 2050 탄소 흡수량(3400만t)은 상당 부분 부풀려진 수치”라며 “산림청은 40~50년 동안 숲에서 자연 천이(遷移·식물 군집의 변화)가 이뤄져 다양한 나무가 혼재하고, 숲이 10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고도 했다. 숲 전체를 싹 없애버리는 개벌은 문제라는 것이다.

대규모 벌목에 따른 산사태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지질 특성은 거의 암반 위에 1m가량 흙이 살짝 덮여있는 형태”라며 “벌목 과정에서 포클레인이 헤집고 다니면 어린나무를 심더라도 산사태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다른 부처에서도 대규모 벌목을 통해 탄소 저감을 하겠다는 산림청 계획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나무가 고령화돼 2050년 숲의 탄소 흡수량이 2018년 대비 70% 감소할 것이라는 산림청 주장이 지나치다는 전문가 의견을 환경부가 취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곧 발족하는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뤄 논란을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