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기온이 19도까지 오르는 등 포근한 날씨가 이어진 10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뉴스1

올해 한반도의 기록적 더위는 ‘뜨거운 바닷물’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4월부터 태평양 감시 구역 수온이 오르는 ‘엘니뇨’가 빠르게 발달했고,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 온도도 평년보다 1~2도 높았다.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 고온 다습한 공기를 불어넣는 대류 활동이 활발해진다.

지난 6월 서울에는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나타났다. 서울의 6월 열대야는 1907년 이후 작년을 포함해 두 번뿐이다. 전북 정읍에선 낮 최고기온이 34.9도까지 올라가 2009년의 34.2도를 14년 만에 경신했다. 8월 중순까지 한반도에는 폭염과 폭우가 반복됐다. 습하고 더운 공기가 많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올 8월 강릉에선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이틀 연속 ‘초열대야’가 나타났다. 초열대야란 밤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인 날을 뜻한다.

그래픽=백형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한반도는 ‘가을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다. 올 9월 전국 평균 기온은 22.6도로, 1975년의 22도를 깨고 가장 더운 9월로 기록됐다. 9월은 전국 평균 최저기온도 19도였는데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서울에선 88년 만에 ‘9월 열대야’가 발생했고, 인천·청주·군산 등도 가장 더운 9월의 밤을 보냈다. 9월 더위는 중국 동북 지방에 있던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한반도로 더운 동풍이 불어온 탓으로 분석됐다.

초가을이 덥다 보니 단풍도 예년만 못했다. 단풍은 9월 말~10월 초 북쪽 찬 바람이 내려와 ‘최저 5도’ 이하로 내려갈 때 물들기 시작해 10월 말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일부 단풍은 붉은 옷으로 바꿔 입기도 전에 다시 기온이 오르자 녹색 잎 상태로 있다가 떨어졌다. 특히 내장산 등 남부지방 단풍 명소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데 북쪽에서 부는 찬 바람이 남부까지 미치지 못한 데다 중부지방보다 더 더웠던 탓이다.

11월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수대로에 올겨울 첫눈이 내리고 있다. /뉴스1

엘니뇨는 11~12월에 ‘전성기’ 구간에 진입한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11월 초 기온은 여름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지난달 2일 경남 김해는 한낮 기온이 30.7도를 찍었다. 강원 강릉도 최고 29.1도까지 오르며 작년에 세운 11월 최고기온 기록(26.5도)을 한 해 만에 경신했다. 11월 더위는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예년보다 0.5도 정도 높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12월도 이변 속출이다. 지난 8일 경북 경주의 최고기온이 20.9도까지 치솟으며 2018년의 최고 기록 18.9도를 웃돌았다. 10일엔 제주 서귀포가 최고 22.4도까지 올라 1987년 21.9도 기록을 36년 만에 바꿨다.

그래픽=양인성

문제는 엘니뇨 등 ‘뜨거운 바닷물’ 영향이 내년에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닷물은 공기보다 데워지는데 시간이 더 걸리지만, 식는 데도 그만큼 오래 걸린다. 그래서 엘니뇨 여파는 발생한 해보다 이듬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내년에 더 ‘뜨거운 맛’을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겨울 날씨는 이상 난동(따뜻한 겨울)과 이상 한파가 극단적으로 교차할 가능성이 있다. 해수면 온도가 계속 높아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북극 기온까지 올라가면 북극 냉기의 남하를 막는 ‘제트 기류’(공기 띠)가 약해져 혹한이 닥칠 수도 있다. 제트 기류는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기온 차가 클수록 강해지는데, 북극 기온이 올라가면 느슨해져 북극 냉기를 막는 병풍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지난 1월 서울이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지고, 중국 헤이룽장의 한 도시 기온이 영하 53도까지 추락한 것은 ‘제트 기류’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한 기상 전문가는 “지구 온난화가 더 심해지면 극단적 추위와 더위가 반복해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12월의 ‘한강 피크닉’ - 서울 낮 기온이 15.5도까지 오르며 포근했던 10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주말 한때를 보내고 있다. 봄날 같은 날씨에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백사장을 거닐었고, 전국 유원지는 두꺼운 외투 대신 가벼운 옷차림을 한 이들로 붐볐다. /뉴스1

☞엘니뇨

태평양 감시 구역 수온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지역이 많아지고, 폭염 강도도 세진다. 반대로 0.5도 이상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은 ‘라니냐’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