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의 11일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은 가운데 무더위를 피해 나온 시민들이 송정해변 솔밭 그늘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에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강릉에서 올해 첫 열대야(熱帶夜)가 발생했다고 기상청이 11일 밝혔다. 작년 첫 열대야보다 6일 빠른 기록이다. 올 첫 폭염주의보는 10일 영남권에 내려졌는데 열대야는 오히려 최북단인 강원도에서 발생했다.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10~11일 밤사이 강릉의 최저기온은 25도였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기온이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강릉은 11일 오전 5시 53분 기록한 25도가 밤사이 가장 낮은 기온이었다. 열대야는 시작일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올해는 6월 10일이 첫 열대야로 기록됐다.

전문가들은 강릉 열대야의 원인으로 ‘바람의 등산’을 꼽는다. 따뜻한 남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더 뜨거워지고, 이 공기가 밤새 공급되며 높은 기온을 유지시킨 것이다. 산은 고도가 높을수록 기온이 낮기 때문에 바람이 정상 부근에 다다랐을 땐 열을 거의 빼앗긴 상태가 된다. 그러다 하강하면서 다시 열을 흡수한다. 바람도 사람처럼 올라가는 속도보다 내려가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하강 과정에서 뺏긴 열보다 더 많은 열을 단시간에 흡수한다. 산을 오르기 전보다 내려온 후 공기의 온도가 더 뜨거운 것이다. 이런 현상으로 작년에도 첫 열대야는 강원 영동 지역인 양양(6월 16일)에서 발생했다.

그래픽=백형선

강릉은 10일 발표된 폭염주의보 지역에 들지 않았다. 낮 최고 기온이 28도로, 폭염 여파로 최고 33도를 기록한 대구·구미 등 지역과 비교해 5도가량이나 낮았다. 강원 영동 지역이 고기압의 가장 자리에 들면서 구름이 끼어 햇볕을 일부 차단해준 영향이 컸다. 낮 동안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영남권보다는 기온이 낮았지만, 오히려 밤에는 뜨거운 바람 때문에 기온이 내려가지 않으면서 ‘열대야’로 이어졌다. 폭염 지역이 낮동안 펄펄 끓은 반면 강릉은 최고·최저기온 온도차가 3도 정도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낮밤이 은은하게 쭉 더웠던 셈이다.

강릉은 올봄 진달래꽃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발아(發芽)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때도 따뜻한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어 뜨거운 공기를 주입하면서 꽃나무가 봄의 기운을 느낄 만큼 기온이 크게 올랐다. 전국에서 강원도 지역에 진달래꽃이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민 것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51년 만이었다.

‘더운 강원도’ 현상은 온난화 여파로 인한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앞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람이 바다를 건너 수증기를 품은 채 육지로 들어오기 때문에 해수면 온도 상승은 남서풍 온도를 끌어올린다. 더 더워진 바람이 태백산맥을 지나며 강원도 지역은 더 뜨거워지게 되는 셈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강원도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해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강원 영동 지역은 봄·여름에 뜨거운 지역 중 하나”라고 했다.

무더위는 전국적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12~14일 아침 최저기온은 16~24도, 낮 최고기온은 26~34도 수준을 보이겠다. 이에 열대야 발생 지역도 늘어날 수 있다.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 지열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체감온도가 30도를 웃돌며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대구·구미는 최고기온 33도를 기록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