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번동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쓰레기를 주제로 한 사진전 ‘22세기 유물전’을 개최한 김명중 작가가 한 작품 옆에 섰다. 버려진 목 마사지기를 크게 확대해 찍은 사진이다. 인물 사진으로 유명한 김 작가가 환경을 주제로 사진전을 연 것도, 사물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처음이다. /김지호 기자

뒷산을 걷다가 거꾸로 반쯤 땅에 처박힌 콜라병이 눈에 들어왔다. 콜라병의 오묘한 푸른빛이 청자처럼 빛났다. 그렇게 쓰레기는 사진작가 김명중(52)씨의 ‘오브제’가 됐다. 그는 2019년부터 황학동 벼룩시장과 포천 고물상, 인천 쓰레기 매립장 등을 돌며 쓰레기를 하나씩 주워왔다. 버려진 사발면 그릇, 휴대용 버너, 스테인리스 주전자 따위를 교과서에 실릴 유물 찍듯 정성껏 찍었다. “무분별한 일회용품 소비와 쓰레기 투기가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후손은 선대가 버린 쓰레기를 유물이라 여기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땅 파면 나오는 게 죄다 쓰레기일 테니.”

11일 오후 서울 번동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쓰레기’를 주제로 사진전을 여는 김명중씨를 만났다. 그는 인물 사진으로 손꼽히는 유명 작가다. 2008년부터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마이클 잭슨, 비욘세, 방탄소년단(BTS) 등과도 작업했다. 그런데 이번엔 초점을 사람이 아닌 쓰레기에 맞췄다. 그는 “쓰레기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빚어내 카메라에 담았다”며 “그러나 ‘예쁜 쓰레기도 결국 쓰레기’라는 블랙 코미디가 이번 전시의 핵심 메시지”라고 했다.

쓰레기 사진이 그의 작업실에 걸리기 시작한 건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19년 무렵이었다. 배달 음식 소비가 늘면서 일회용 집기와 식기, 쓰레기가 넘쳐났다. 세상은 쓰레기장이 돼갔다. 청자처럼 빛났던 콜라병을 떠올리며, 도시 이곳저곳에 널린 쓰레기를 주워 작업실로 가져왔다. 쓰레기를 고이 모셔 인물 사진에 주로 쓰는 가로 8인치, 세로 10인치 대형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았다. 출력한 쓰레기 사진들이 작업실 한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작업실 찾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했다. 그 사람들 손에는 일회용 컵에 테이크 아웃 커피가 들려있었다. 이 아이러니를 풀어가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22세기 유물전'을 기획한 사진가 김명중. /김지호 기자

그의 사진을 보고 광고 대행사를 하는 친구가 재밌는 제안을 했다. 마치 박물관 특별전을 열듯 주워 온 쓰레기들에 각각 이야기를 입혀 전시해 보자는 것. 2019년부터 작년까지 그가 모은 쓰레기 총 150점 중 38점이 채택됐다. 버려진 뿅망치, 치실, 빨래 집게, 부서진 바가지 등이 쓰레기에서 미래 유물로 신분을 세탁했다. 소개 글도 달렸다. ‘충북 괴산 동진천 출토 라바콘.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 긴급 상황을 알리는 데 쓰임. 고밀도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재활용 어려움으로 지구 환경을 파괴 중. 그러나 소재 개발자는 1963년 노벨상을 수상.’

쓰레기 사진은 모두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했다. 아날로그 촬영 기법이라서 습도·온도 등에 따라 사진에 여러 자국이 생겼다. 그는 “처음엔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이미 가치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버려진 물건이다 보니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폴라로이드는 예측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고 그것은 한낱 쓰레기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이 사진을 본 관객들은 쓰레기가 후대에 유물 같은 대접을 받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 미칠 것이고 그 괴리감을 통해 환경에 대한 경각심도 커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환경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인물이 아닌 사물을 전면에 세운 것도 처음이다. 그는 “인물 사진은 최대한 많이 찍고 그중 가장 빛나는 ‘한 컷’을 고르는 것이 핵심이라면, 오브제를 찍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사진전을 통해 우리가 후손에게 최소한 쓰레기를 물려주진 말자는 공감대가 마음속에 생긴다면 그것이 이 전시의 빛나는 ‘한 컷’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