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가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38%로 전국 평균 저수율(75%)보다 한참 낮은 수치를 보이자 시민들에게 물 절약 사용을 당부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오봉저수지 상류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연합뉴스

21일 오후 강원 강릉 성산면 오봉저수지. 8월 중순이면 수심 11m까지 물이 차 있어야 할 저수지가 일부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말라 있었다. 총 1430만t을 가둘 수 있는 물그릇은 현재 저수율이 약 35%(500만t)에 그친다. 지난달 장마가 끝나고 긴 폭염이 이어진 데다 비까지 거의 내리지 않아 저수율이 뚝 떨어진 것이다. 인근 주민 최양순(65)씨는 “벼가 말라가면서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있다”며 “가을 배추 심기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폭염이 이어지며 전국이 가물고 있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46.7㎜로 작년 같은 기간(160.5㎜)의 29% 수준이다. 올여름 대기 상·하층을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이불 덮듯 두 겹으로 감싸 비구름대가 잘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태백산맥 동쪽 지역이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가뭄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다에서 불어온 뜨겁고 축축한 남풍(南風)이 산맥을 넘는 과정에서 수증기 없는 건조한 열풍만 남았기 때문이다. 9호 태풍 ‘종다리’의 영향으로 20~21일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강하게 내린 비도 한반도 동쪽에 많은 가뭄 지역은 대부분 피해갔다.

강원 영동 지역인 강릉은 8월 들어 지난 20일까지 강수량이 ‘0.7㎜’에 그쳤다. 강릉 수돗물의 90%를 책임지는 오봉저수지가 마르자 농업 용수는 이틀 간격으로 급수와 단수를 반복하고 있다. 오봉리에서 오이를 재배하는 한 주민은 “팔뚝만 한 오이를 수확할 시기인데 비가 안 오다 보니 크기가 주먹만 하거나, 먹어도 너무 써서 상품 가치가 없다”고 했다. 강릉에는 지난 1~7월 616.3㎜가 내려 작년 같은 기간(514.4㎜)보다 강수량이 19.8% 늘었다. 그런데 8월 들어서는 작년 같은 기간에 439.2㎜가 온 데 비해 올해는 완전히 말라버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생활 용수 공급 차질까지 우려되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소백산맥 동쪽의 내륙 지역도 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경북 청도는 20일까지 8월 강수량이 2㎜였다. 작년 같은 기간엔 160.5㎜가 내렸는데 올해는 1.2% 수준으로 급감했다. 청도에 있는 낙동강 운문댐도 말라가고 있다. 현재 저수량은 8269만5000t으로 저수율이 51.6%에 그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19일 운문댐의 가뭄 단계를 ‘정상’에서 ‘관심’으로 격상했다. 비가 계속 안 올 경우 내달 중순엔 ‘주의’ 단계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운문댐에서 물을 받는 대구와 경북 청도·경산은 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8월에는 한반도 동남쪽 상공에 있는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고온 다습한 남풍이 밀려 들어오면서 기온이 크게 올라간다. 이 축축한 바람은 산을 타고 올라가면서 비를 뿌려 건조한 상태가 되며, 산 정상을 넘어 분지로 내려가면서 다시 온도가 올라간다. 해풍을 직접 맞는 바닷가에 비해 내륙 지방은 소나기조차 잘 내리지 않는다.

올 7~8월에 태풍이 적게 발달한 것도 가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년(1991~2020년·30년 평균) 7~8월에는 각각 3.7개, 5.6개의 태풍이 발달한다. 이 중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건 7월이 1개, 8월이 1.2개였다. 그러나 올해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첫 태풍이 8월이 돼서야 왔다. 거대 저기압인 태풍이 북상해야 폭염으로 쌓인 열기를 한 차례씩 제거해주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태풍 ‘종다리’는 20일 밤 서해상에서 소멸한 후 거대 비구름대를 이끌고 수도권 등 중부지방 곳곳에 많은 비를 뿌렸다. 이에 따라 한반도 서쪽 대비 동쪽의 ‘극과 극’ 강수량 차이가 더 커졌다. 서해안의 충남 서산에선 태풍의 영향을 받은 20~21일 비가 137.6㎜ 내려 차량 2대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났다. 태안(124.5㎜)·당진(115.5㎜)에도 100㎜ 넘는 비가 내려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됐다. 21일 비가 내린 수도권과 강원도에선 각각 경기 동두천(121㎜)·파주(103㎜)와 인천 강화(106.4㎜), 강원 철원(118㎜)·양구(108.5㎜) 등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그러나 21일에도 강릉은 3.7㎜, 청도는 17.5㎜에 그쳤다.

22일에도 비구름대를 동반한 기압골의 영향으로 중부지방 20~60㎜, 남부 5~40㎜, 제주 10~40㎜의 비가 예상된다. 비가 그치고 나면 다시 찾아오는 무더위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가을에 접어드는 9월까지 낮 더위, 밤 더위가 해소되지 않는 ‘9월 폭염’ ‘9월 열대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21일 기준 31일째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발생한 서울은 이달 말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 37일째 발생한 제주는 26도 이상일 것으로 예보됐다. 9월의 폭염과 열대야는 흔한 현상은 아니다. ‘최악 여름’으로 꼽히는 2018년에도 제주에서 8월 31일을 끝으로 이후에는 폭염이 나타나지 않았다. 열대야는 9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대부분 남부 지방이었고 서울 등 중부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