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울산에 있는 아파트 14곳은 전기차 충전기를 지상으로 옮길 예정이다. 지난해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울산시는 올해부터 전기차 충전기를 지상으로 이전하는 경우 비용의 70%를 지원해주고 있다. 아파트마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입주자 대표 회의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아파트에선 “지하 주차장 이용을 막는 것은 재산권 침해다. 소송으로 대응하겠다”며 전기차 소유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전북의 A 아파트는 올 초 지상으로 전기차 충전기를 이동시키며 출입구에서 가장 먼 구석진 곳에 충전기를 몰아서 설치했다. 전기차 차주 김세영씨는 “입주자 대표 회의 과정 중 설치 관련 논의가 있긴 했지만, ‘화재가 나면 책임질 수 있느냐’는 말이 되풀이돼 대화가 안 됐다”고 했다. 경기도 안양의 B 아파트는 화단 등 시설을 줄여 지상 공간을 확보할 예정인데, 이 비용을 두고 다툼이 일었다. 주민 중 일부가 “실제 충전기를 이용하는 전기차 차주들이 이 비용을 나눠 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안양의 다른 C 아파트에서는 한 전기차 차주가 지상 주차를 권고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의 의결을 문제 삼아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달 초 서울 영등포구 D 아파트의 전기차 차주는 “충전기 지상 이전은 재산권 침해”라며 입주자 대표 회의에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법규정상 전기차 충전기는 지하 3층 이상이면 어느 곳에나 설치할 수 있다. 그동안 지하 주차장이 있는 아파트들은 대부분 지하에 설치했다. 주차를 하면서 충전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겨울철에 전기차를 야외에 두면 배터리 방전으로 성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인천 청라 아파트에서 전기차로 인해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자 가솔린·디젤차를 가진 다수의 입주민을 중심으로 여론이 바뀌었다. 지하 주차장은 화재가 발생하면 열기가 머물고 가스가 잘 빠져나가지 않는 데다, 소방차 진입도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전기차 차주들은 이 같은 주장이 비과학적이며, 다수의 횡포라고 주장한다. 전기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1만대당 전기차 화재(1.32건)가 비(非)전기차(1.86건)와 비교해 더 적다’는 소방청 통계 등을 거론한다. 이들은 “지상에서 추위, 더위, 비, 눈 등을 다 감내하란 것이냐” “입주자 대표 회의가 비(非)전기차 차주로만 구성돼 불공정하다”고 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화재 사건 후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감지·작동이 빠른 습식 스프링클러 설치, 지하 주차장 벽에 방화 성능을 갖춘 소재 사용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충전기 설치 위치와 관련해선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는 말만 했다. 정부 관계자는 “충전기 설치와 관련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설치 위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했지만, 결론을 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은 “화재 진압 현실 등을 반영해 충전기 설치 위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와 함께 필요 이상으로 극대화된 전기차 포비아(공포)를 줄여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